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Aug 25. 2019

작가가 뭐길래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작가임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 1 작가가 되는 날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인가.  엄마가 새벽부터 숱도 별로 없는 머리를 곱게 따주었다.  그리고 엄마 손에 이끌려 커다란 연회장에 왔는데, 무대 위에 할아버지가 계셨다.  웅성웅성.  처음 보는 사람들의 몇 개의 연사가 이어진 후, 엄마에게 등 떠밀려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할아버지께 꽃다발을 안 켜드렸다.  그리고 향수가 짙은 어른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 오는 내내 엄마에게 '오늘 무슨 날이야?'하고 몇 번이고 물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작가가 되시는 날'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에야, 그 날이 할아버지가 예순 넘은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로서의 두 번째 삶을 시작한 날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줄곧 -  내 머릿속에 작가는 '되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축하를 받을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뿌리 잡았던 것 같다.  






#2 그래서 작가님 생각은요?
그래서,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대요?


퇴사를 하고 나서 아쉬운 것 중 하나는 명함이다.  명함이야 파면 그만이지 않나 싶겠지만, 회사 직급이나 회사에서 부여받은 내 역할이 아닌, 내가 직접 정의 내린 나의 '역할'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은 꽤나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물론, 프로젝트 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 -디자인-은 명확했지만, 참 희한하게도 '디자이너'라는 호칭은 쓰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사장'이나 '대표' 이런 명칭을 붙이고 싶은데,  건방진 포부와 달리 스스로를 너무나 잘 알아서 그런 호칭은 또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유독 미팅이 많았던 이번 주, 세 건의 미팅과 한 개의 모임에서 나를 '과분하게도'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호칭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아리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호칭이 나에게 마냥 편한 것임은 아님을 바로 직감하였다.



".. 아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대요?"


 이 골 때리는 질문은,  내가 아주 유창하게(내 생각에) 지금 이 프로젝트의 문제점은 이렇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고, 이런 것을 첨부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직후에 이어졌다. 이미 이 미팅 전에 몇 번 뵀던 담당자였고, 그분이 좋아하는 스타일도 알 것 같고, 팀 분위기도 파악했으니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정답'일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어떠냐니. 그것도 '작가'인 내 생각이 어떠냐니. 줄곧 말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란 말인가.    


"음.. 물론 저희가 기대하는 방향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작가님이 조금 더 이 프로젝트를 본인의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작가님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주셨으면 해요. 저희가 컨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


내가 제대로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니 하고 싶은 대로 함 해봐라'라고 들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숱한 클라이언트들의 요구를 그냥 묵묵히 들어주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고 나도, 내가 내 맘대로 휘갈겨 그린 선을 누군가가 찾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나하고 싶은 대로 함 해봐라'라는 말이 그토록 무서운 말인지는 알지 못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되는 것'이 어려운 줄 알았지, '하는 것'이 어려운 지는 몰랐다.  결국 그 미팅의 끝은 '나의 생각을 풀어야 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과제만 잔뜩 짊어진 채 마쳤다.




#3 그냥, 그럴 것 같아서

할아버지는 국어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줄곧 '작가'셨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제일 즐겨하던 놀이는 '삽화 놀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아주 짧은 글을 들려주시거나, 직접 글을 써주시면 나는 그것에 맞는 삽화를 그렸다.  그 짤막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어떤 옷과 머리를 하고 있을지 알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거침없이 그려나갔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이 친구는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니?' 라던가 '여기 배경은 왜 이렇게 표현했니?'라고 여쭤보셨는데,  일곱 살의 나는 '그냥 그럴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때의 나는 내 생각에 참 확신이 있더랬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가 미대에 가기를 진심으로 바라셨고, 결국 나는 그 바람대로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한해, 두해 지날수록 할아버지와 나의 짝짝 쿵은 조금씩 어긋났다.


"할아버지, 이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고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는 OOO에요. 그런데 여기가 이런 것을 좋아하니,  이런 식으로 표현해보고 있어요."

"고것 참 멋있구나. 그런데 작가라는 것은 말이다 - 너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니, 할아버지 - 저는 작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라니깐요."


할아버지 무르팍에 앉아 자유롭게 내 생각을 얘기하던 일곱 살의 영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에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할까'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나의 생각은 무엇이냐고' 물은 이번 미팅은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와 몇 해 전 나누었던 작가와 디자이너에 대한 토론도 생각이 났다. 해서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명쾌한 답을 주셨다.


"너는 이유가 있어서 할아버지와 그림을 그릴 때 그렇게 그렸니? "

"아니요, 그냥 그럴 것 같았어요."

"그래, 그러면 돼."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어, 나의 생각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멋들어진 말들로 내 작업을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내가 진심이면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는 것을 얘기해주셨다.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불현듯 중요한 질문이 떠올라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하지만, 제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거나 결국 제 작업을 마음에 안 들어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설득하죠?"


그리고 뒤이어 나의 우문에 대한 할아버지의 현답이 이어졌다.


뭔 상관이니. 내 작업 싫다는 놈이랑 일 안 하면 그만이지.
작가 하고 싶다고 한 것 아니었어?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후에야, 내가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겁을 먹고 있었음을 - 상대방의 평가에 연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지난 미팅을 떠올렸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담당자의 말의 의미를 알겠더라. 나는 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추측'하는 행위를 내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로 착각하고 있었다.  담당자와 한 이야기들, 팀에서 주고받은 정보들은 모두 잊고, 내가 현재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쭉 적었다.  다소 편향적인 나의 생각일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경험일 수는 있으나, 어찌 됐건 앞서 미팅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이 나왔다.  그리고 그 방향이, '작가' 김영지가 다음 미팅 때 들고 갈 내용이라고 마음먹었다.









#4 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같은 주 금요일에는, 내가 '기획자'의 입장으로 참여하여 '작가님'들을 상대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 미팅이 있었다.  제목만 공개되고 서문도,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작가님들을 처음 뵙는 자리었다.  15명의 작가님들이 각자 개인이 어떻게 작업을 진행할 것인지 얘기해주었다.  제목만 보고 기획한 방향을 한 명씩 얘기해주었는데, 작업의 스타일이 다름은 물론이고, 각자가 해석한 제목의 의미도 달랐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연결시킨 분, 평소 작업의 연장선상에 주제를 두신 분, 평소 하는 작업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관심 있던 소재로 다시 이야기를 구성하신 분.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고, 어느 누구도 '맞다, 틀리다' 하지 않았다.  발표를 쭉 듣는 나도, '어떻게 이렇게 다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뒤이어진 뒤풀이에서, 경외 반 호기심 반으로 요즘 하고 있던 고민들을 작가님께 쭉 들려드렸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타인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음을, 문득문득 내 생각의 흐름이 막혀 타인의 생각을 훔쳐보기도 함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한 작가님이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던져주셨다.



"영지 작가님은, 모두 다 다르게 해석된 이 15개의 방향 중에 틀리다고 생각하는 게 있었나요?"

"아니요, 어떻게 이렇게 다 다를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애초에 맞고 틀리고는 없어요.  그냥 공감을 얼마나 더 이끌어내냐 지요. 물론, 간혹 이 작업이 너무 내 세계에 갇혀서,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그보다 전에, 내가 내 생각을 충분히 숙성시켰는가 - 를 고민해요."


작가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는 점점 더 작가라는 것에서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셨을 때가 생각났다. 애초에 작가라는 것이, 마음가짐이 되기가 참 힘들어서 - 그래서 그렇게 축하를 하고 상을 주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과 작가님들에 대한 경외감, 앞으로 남은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이 뒤섞여 있을 때 즘, 작가님이 이렇게 얘기해주셨다.


작가는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작가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 같아요.

"작가는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작가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 같아요. 지나가던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되고, 클라이언트나 어떤 요청이 없어도, 어떤 표현을 하고 싶고.. 그런데 영지 작가님도 자기 안의 그런 욕구를 느껴서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한 거 아니에요? 충분히 작가죠, 아직 자기에게 딱 맞는 매개를 못 찾았을 뿐".


줄곧 - 거의 20년 넘게, 할아버지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였다. 나는 '디자인과'를 나왔기 때문에, 디자이너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작가님의 이야기는 아리송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확신이 드는 것은, 내가 내 안에서 주제를 찾아 표현하고 싶었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나도 '새내기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작가님들과 헤어지고 집에 와서 조용히 혼자 생각했다. 내가 이 전시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뭘까? 하고 말이다.





#5 작가가 뭐길래

디자이너로서의 나는, 나의 밖에서 발견되는 주제를 분석하고 연구하여 표현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이제 작가로서의 나는, 내 안에서 발견되는 주제에 조금 더 솔직해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상대방이 이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보다는 내가 내 안의 주제를 충분히 발전시켰는가가 조금 더 중요한 과제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은 너무나 어렵다.  게다가 나는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반쪽자리 작가이고, 내가 '디자인'일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잘 안다는 것도 참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유독 '작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 이번 주,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같이 사진을 찍었던 그 날과,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삽화를 그리던 날들이 많이 생각났다.

작가가 뭐길래.






어려서 그렇습니다>에 대해..


"네가 어려서 그래~" 어떤 질문에 대해 열에 여덟 꼴로 돌아오는 답변이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어리지만, 좀 더 어렸을 때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 이제는 '뉘예 뉘예 제가 어려서 그렇습니다' 라며 당당하게 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서 그렇습니다>는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26살 늦깎이 사춘기 영지의 자전적 에세이로, 매주 일요일에 연재하는 것을 '일단'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브런치를 구독해주셔도 좋고, 제 글을 메일로 개인적으로 매주 받아보시길 희망하시는 분은  아래 링크로 접속하여 폼을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메일로는 제가 글을 쓴 뒷 이야기와 구독자분께 쓰는 편지를 같이 보내드려요 소곤소곤 )


https://forms.gle/qjLV5fmFTQ7YFCUD8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에서 '프리'가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