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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Aug 03. 2019

미스 개복치

사회에 던져지니 온갖 이유로 죽지만, 계속 살아나는 내가 바로 개복치.


_人人人人_
> 돌연사 <
 ̄Y^Y^Y^Y ̄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게임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개복치를 모험시키며 먹이를 이용해 성장을 시키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그냥 듣기로는 평범한 (오히려 흔한) 게임 같다. 하지만 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말도 안 되는 돌연사' 때문이었다. 물이 차가워서, 햇빛이 눈부셔서.. 등등 개복치가 죽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잘 키우던 개복치가 정말로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는 돌연사에 죽어버리니 헛웃음 나왔는데, 이 헛웃음이 인기의 포인트였다.

아 그런데 웬걸, 사회에 던져지니 온갖 상황과 변수에 쇼크 받는 것이 딱 내 모습 같다.  조금 섬뜩한 말이지만, 게임이었으면 이미 수도 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미스 개복치'라고 불러보련다.




살아남아라 ! 김영지!



"파란만장 혹은 시트콤"

 이유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으나, 참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많았다. 아직까지도 황당, 혹은 아직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에피소드를 몇 개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파리에서 살던 집 '외벽'에 구멍이 뚫려서 200만 원 가까이 변상해 줄 뻔 함.

2. 주말에 한식을 만들어준다길래 찾아갔던 파리의 한인 교회가 알고 보니 사이비..

3. 집 꾸미려고 부른 도배사가 알고 보니 사기꾼

4. 경유했던 터키 공항에서 테러가 나서 갇힘

5. 아, 참고로 지난주에는 주차하다가 앞문 뒷문 다 박살 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글 시작도 하기 전에 분위기가 어두워질 수 있으니 여기서 그만하겠다.


평범한 가정에서 풍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자란 나인데 별의별 일들을 겪다 보니,  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의 반응은 똑같다.



아 거, 완전 시트콤이네, 시트콤!


시트콤이라.. 시트콤은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진지한 분위기를 배제한 ‘개그 장르’이다.  물론 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나도 약간의 MSG를 첨가하여 재밌게 얘기를 한다.  하지만 내가 당시에 겪을 때는 정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겁이 나고,  그때 받은 스트레스는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띵하다.  그런데 다 해결하고 시간이 지나니 나도, 그리고 사람들도 '시트콤'이라며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겁 없는 나, 아니 겁대가리 없는 나

지금 와서,  왜 그렇게 사건 사고가 많았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유는 명쾌하다.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패기 넘치는 어린 나는 '겁대가리'가 없었다.




나는 '겁이 없다'는 것과 '겁대가리가 없다'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겁이 없다'는 말은 예상되는 위기 요소들을 충분히 생각한 후에도, 실천하려는 용기가 있는 것이다. '겁대가리가 없다'는 것은 위기 요소는 생각 안 하고, 패기만 넘치는 경우를 얘기한다.


지금도 충분히 어린 내가, 더욱 어렸을 때는 "세상에는 열심히 하면 그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많아!"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입학할 때도, 학교 규모의 작은 프로젝트를 할 때도 열심히 하니까 다 잘되는 것 같더라.  하지만 내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부모님의 비호를 벗어난 타지에 던져져 보니.. 정말 나는 매일매일 돌연사하는 개복치가 아닐 수 없더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굴리는 잔머리들은 이미 어른들의 손바닥 안 이었고, 나의 넘치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좋은 분들도 많지만, '순진하구나' 하며 이용해 먹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그때 당시에는, 진짜 내가 아무리 아무리 고민해봐도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만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한결같으셨다.


하이고.. 아니 왜 그렇게 무모하게... 겁도 없이




그래도 개복치는 성장한다.

개복치를 열심히 키우다가 갑자기 만난 돌연사는 정말이지 '울컥한다.'  특히 운 좋게 길게 살아남았을 때 어처구니없는 돌연사 사유를 만나면 '아니 이런 것으로도 죽어?' 한다. 하지만 그 탄식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의 개복치는 그다음 회차에는 죽은 사유를 습득하여, 다시 같은 이유로 죽지 않고 더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언제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을까 싶지만, 어찌 됐건 면역이 생긴다.  아예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해결책을 쉽게 떠올리고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내가 두 번째 겪는 사건은, 나에게 순간의 스트레스는 줄 수 있어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


나도 개복치처럼 성장하는 것이다. 


개복치를 성장시키는 계기는, 내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단적인 에피소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에 올라와 처음으로 혼자 자취방을 구해볼 때..

-집에 수없이 쌓여있는 세금 고지서에 어떤 단어도 이해가 안 될 때,

-심지어 집에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등장한 바 선생님 ( 바X벌레 )까지..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만날 때마다 당혹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의 대처방안은 더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함께 사는 개복치

그리고 내가 여러 사건사고를 수습하면서 얻은 하나의 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들은, 내가 혼자 수습하려 했기에 점점 일이 감당 안되게 커졌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별게 아닌 일일 수도 있다. 특정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도, 그저 시간이 주는 지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대부분이다.   우리는 광활한 바다를 홀로 헤엄치는 개복치가 아니다.  돌연사의 상황이 왔다면, 주변에 사람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라.  세상엔 안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다.





내가 파리에 있을 때 200만 원어치 벽의 구멍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연히 마주친 조선인 아저씨 덕분이었다. 가볍게 만났고, 그분이 미장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언제 다시 뵐지 몰랐지만 예우를 갖추었다.

끙끙 앓다가 생각이나 혹시 하고 연락드렸더니,  흔쾌히 와주셨고, 벽상태를 보더니 프랑스인 수리공이 외국인이라며 너무 심하게 바가지를 씌운 것 같다며 40만 원에 수리해주셨다.  물론 40만 원도 바가지 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건 200만 원어치의 스트레스 보단 나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게도 좋은 사람들로 기억되고, 나 역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밉보이지 않도록 노력하자.  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 큰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개복치는 혼자가 아니야


개복치는 오늘도 죽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나는 미스 개복치다. 그리고 미스 개복치는 지난주에는 '운전' 때문에 별의별 사건 사고를 겪었다.  그저께는 양화대교 빠지는 길에서 세 번 연속 길을 잘못 들었더니, 스트레이트로 인천까지 다녀왔고..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어 올림픽대로 갓길에 잠시 세워두기도 했었고.. 어제는 씨가 잭이 고장 나서 켜지지 않는 핸드폰 부여잡고 밤 12시에 서울에서 길을 헤맸다.  지난주에 주차하다가 앞문 뒷문 다 해먹은 것은 아직도 마음이 쓰라리다.. 이래서 주변 사람들이 시트콤이라고 하나보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도 내 운전 실력은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운전뿐일까. 처음 해보는 일들로 스케줄이 꽉 차는 요즘, 별의별 변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대처를 잘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잘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사건 사고들은 재미난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 - 혹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너무 많아 흡사 스스로가 개복치 같다면 그냥 인정해 부려라.  그리고 깔끔하게 죽었다 깨어난다 생각하자.  깨어나면, 조금 더 튼튼한 개복치가 되어있을 테니까!





<미스 개복치> 마침




<어려서 그렇습니다>에 대해..


"네가 어려서 그래~" 어떤 질문에 대해 열에 여덟 꼴로 돌아오는 답변이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어리지만, 좀 더 어렸을 때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 이제는 '뉘예 뉘예 제가 어려서 그렇습니다' 라며 당당하게 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서 그렇습니다>는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26살 늦깎이 사춘기 영지의 자전적 에세이로, 매주 토요일에 연재하는 것을 '일단'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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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로는 제가 글을 쓴 뒷 이야기와 구독자분께 쓰는 편지를 같이 보내드려요 소곤소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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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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