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입소스 세계 여성의 날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by 박정훈
650817656_34467529216226047_8324943761186856664_n.jpg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산하 글로벌 여성 리더십 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6 세계 여성의 날 설문조사’ 결과(29개국 성인 2만 3268명 대상 온라인 설문)를 한국 중심으로 살펴봤다. 한국은 ’성평등에 대한 인식‘ 부문에서는 굉장히 문제적이고 우려스러운 반면, 의외로 성역할에 관한 인식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특히 여성의 성역할의 경우)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는 한국 여성과 남성의 젠더인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말하기엔 부족할듯 하다.


"여성과 남성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한국인들의 53%(평균 52%)가 그렇다고 밝혔다. 문제는 남성은 동의율이 65%나 되는 반면에 여성의 동의율은 4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인식 격차가 극심하며, 한국 여성과 달리 한국 남성은 이미 성평등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인식 격차가 25%p로 가장 심했고 (남성 55%, 여성 30%), 한국은 23%p로 2등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의 성격차지수는 6위이고, 한국은 101위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한국 사람들은 21%에 불과했다. (남성 13%, 여성 28%). 평균이 39%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참 못 미친다. 심지어 이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은 74%로 최하위였다(뒤에서 2등인 일본에 비해서도 10%p나 많았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페미니스트가 아님“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백래시에 의해 ’페미니즘‘ 자체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스웨덴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48%가 ”그렇다“라고 답했다(남성 38%, 여성 57%).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두 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 먼저 한국 남성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는 비율은 29개국 남성 중 가장 낮았다. 그리고 조사대상 29개국 중 2019년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다“에 동의한 비율이 줄어든 국가는 여섯 국가(브라질, 칠레, 멕시코, 페루, 한국, 일본)인데 그중에 한국이 -7%p로 감소 비율이 가장 컸다. 2025년 기준 지난 6년 동안 대체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KakaoTalk_20260316_132202015_02.jpg

"여성 평등을 추진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진행되어 이제는 남성에 대한 차별이 되고 있다"라는 질문에선 한국인의 47%(평균 44%)가 동의했다. 이 질문에선 남성과 여성의 인식 격차가 29개국중 가장 컸다 (남성 60%, 여성 33%).


"정부와 기업에서 책임 있는 직책에 더 많은 여성이 있다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다"이 질문에 한국인들은 47%가 동의(평균 60%)해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무려 43%나 됐다. 한국 남성들은 이 질문에 35%(여성은 58% 동의)밖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것 역시 29개국중 최하위다.


또한 "기업과 정부에서 여성 지도자가 더 많아지지 않는 한, 여성은 남성과의 평등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에 대해서도 한국인은 44%만 동의(남성 36%, 여성 52%)해서 최하위를 기록(평균 54%)했다. 비슷하게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을 달성하는 것이 당신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 질문 역시 "중요하다"라고 응답한 한국인은 51% (남성 42% 여성 61%)에 불과해서, 최하위(평균 68%)를 기록했다.


KakaoTalk_20260316_132202015_01.jpg

성평등 인식에 대한 동의율에서 느낀 것은 한국은 여성들의 성평등 인식마저 굉장히 움츠러들었다는 점이다. 이 결과를 잘못 읽으면 여성들마저 성평등 의제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나 백래시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 분위기를 악화시킨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가 지금 얼마나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회인지 실감케 만든다.

-

반면 여성의 성 역할에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여성이 그의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면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긴다"에 한국인들은 14%(평균 27%)밖에 동의하지 않아서 보고서에서도 "해당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높은 나라"로 언급됐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여성은 너무 독립적이거나 자립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 등의 질문에서도 동의율 하위권에 랭크됐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여성은 남성에게 더 매력적이다”라는 질문에선 45%의 한국인이 동의(평균 35%)해서 상대적으로 상위권에 랭크됐다.


KakaoTalk_20260316_132202015_03.jpg


남성의 성 역할에 관련된 질문에선 "진짜 남성은 성관계를 거절하면 안 된다"에 동의하는 한국인은 9%(평균 17%)로 29개국 중 하위권에 랭크됐다. "남성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여성이 일하면 결혼에 문제가 생긴다"라는 질문도 15%(평균 23%)밖에 동의하지 않았다. "남성은 친구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라고 말에도 16%밖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평균(24%)에 못 미쳤다. 반면 "돌봄 책임을 맡는 남성은 여성들에게 더 매력적이다"라는 질문엔 29%(평균 49%)밖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꼴등을 기록했고, "젊은 남성은 체격이 크지 않더라도 강해져야 한다"라는 질문에는 45%나 동의(평균 32%)를 해서 6위를 기록. 전반적으로 조금 혼란스러운 결과가 나타났다.


-


물론 해당 연구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이 연구의 핵심은 Z세대 남성이 이전세대 남성보다 성 역할에 대해서 보수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 남성 18%vs Z세대 남성 31%) “여성이 남편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결혼에 문제가 생긴다”(베이비붐 세대 남성 18%, Z세대 29%)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 결과는 충격적이다.


”여성은 너무 독립적이거나 자립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 ”육아 참여 남성은 덜 남성적“ ”남편이 가정의 중요한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려야 한다“ 이런 주요 질문 상당수에서 Z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더 가부장적인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완전한 퇴행이다. 가부장으로의 회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 ’청년 극우화‘의 주요 구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아주 이상하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양상은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에서도 언급했지만, 조금 다르다. 분명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세계 여성의 날 기념 38km 러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