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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지내니
by 나란 작가 Mar 04. 2017

스타트업 1년 차

없어지지 않았다.

스타트업 1년 차 (2016.2.29~)

없어지지 않았다.


주체는 회사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 하나씩 꺼내보자.  


우선, 회사는 없어지지 않았다.

월급도 12개월 동안 꼬박꼬박 챙겨줬다.


보통 스타트업 하면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고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말은 '비즈니스 모델' 또한 혁신적이고 세상에 없던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 말은 돈을 내는 사람에게 A부터 Z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것. 커피믹스 한창 마시던 시절 유학 물 먹고 온 친구 따라 스타벅스에 갔는데 왜 이 돈을 주고 커피를 마셔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 듣던 시절 같은 것. 가까운 미래에 아플 때 병원 가서 진료비 내는 거 말고 채팅이나 화상으로 진료받는데 진료비를 청구했을 때 선뜻 네이버 페이도 아닌 이니시스로 휴대폰 결제를 완료해야 할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공인인증서까지 가더라도 결제를 완료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즉, 주머니에서 돈 나오는 데 시간이 배로 곱절로 걸리기 때문에 소위 Funnel이라고 일컫는, 단계를 줄이고 줄여도 결제가 일어나기 쉽지 않은 것. 결국 직원 월급 주기 쉽지 않은 것.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챙겨준다는 건 여간의 일이 아니다. 덕분에 나는 원래부터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절대 사업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그래서 사업하시는 분들 보면 나도 모르게 차렷! 마음으로 경례!).   


서비스도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비스를 운영하던 동료들은 없어졌다.


작년부터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문화를 이식한다며 이런저런(LG유플러스는 지난해 ‘즐거운 직장팀’을 신설) 시도 중이다. 그중  '직급 없애고 모두 ~님, ~프로으로 통일하기'가 있던데 적극 찬성이다. 스타트업에 다니기 전 5년 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직급에 대한 불편은 딱히 없었다. 입사하기 전에 닉네임을 정해오라길래 당시 빠져있던 영화 <어톤먼트> 여주인공 이름으로 정해갔더니 대표부터 인턴까지 서로 닉네임을 부르되 말은 낮추지 않았다. 대구 사투리 쓰다가 서울말로 적응을 참 빨리 했는데 그만큼 빠르게 닉네임 + 존댓말에 익숙해졌고 일하는 데에 있어 효과적인 방법이구나 무릎을 친 적이 많다. 회의에서 너도 나도 닉네임을 부르며 이야기하니까 '닉(닉네임) 말처럼 이러쿵저러쿵한 것 같아요', '왕(닉네임) 엄청난 아이디어네요. 굉장해요. 멋져요' 이런 문장들이 오고 간다. 나이와 관계없이, 윗사람 아랫사람 없이 모두 '동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 동료들에게 스타트업은 어려운 조직이다. 입사하고 3일째 되던 날 신입사원 면접을 봤다. 입사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몇 개월 다니던 직원이 퇴사했다. 입사하고 몇 주가 지나 인턴이 면담을 신청해왔다. 입사하고 3개월 안 된 것 같은데 초기 멤버가 퇴사를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 입사하고 분명 6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신입사원 면접을 또 봤다. 입사한 지 8개월이 되었을 때 인턴 면접을 매주 봤고 입사한 지 약 10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인턴 3명과 정직원(신입사원급) 5명을 모두 떠나보냈다. 문제는 그 친구들의 관리자 급이었던 나에게도 개발자 중심의 회사에게도, 그들 자신에게도 있겠지만 '스타트업' 자체가 이유일 수 있다. '시키는 일'이라는 게 없다. 좋게 말하면 '책임과 권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방치'이기 때문에 일을 배우고 사회생활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신입사원에게는 출퇴근이 일정치 않으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IT 조직이 출구 없는 바다로 느껴질 수 있다.


다들 고르게 역량을 갖춘 친구들이었기에(면접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건 '쪼', 한 분야에 집착하거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지를 주요하게 봤다.) 마지막까지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고 나갈 때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몇몇은 몰라도 나머지 몇몇은 SQL(Structured Query Language, 위키백과: 대화식 프로그래밍 언어)을 제대로 배웠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도 아직 베이비스텝이지만 SQL은 정말 유용하다. 분명 이거 잘 하면 좋은 조건으로 취직할 수 있다.


내 커리어는 없어졌다.

사실 원래부터 없었다.


입사 며칠 전, 대표가 링크와 함께 내 명함에 새겨질 직책을 알려줬다. 'Head Of Content'(Seed Camp Wanted). 그렇게 난 콘텐츠를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바이럴 루프라는(당시 처음 듣는 말이었다. Viral Loop = 입소문으로 고객을 계속 유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미션을 부여받고 앱 내에 있는 이야기가 공유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 나의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었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 Facebook에서는 'People you may know'를 통해 아는 사람을 찔러줘 바이럴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걸 알아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을 테니까 결국 아무도 모르는 일인 셈이다.) 심지어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걸 알려줘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확신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만족할 만큼 성과가 나진 않았다. '성과중심' 조직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실험' 같은 것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성과가 없으면 아무리 일해도 말하지 않았고 '경험 공유'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탓에 말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데이터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신입사원이 배워가면 어디든 취직한다는 데이터적 관점!


매일 2시에 데이터 분석 미팅을 했는데 도저히 점심이 넘어가지 않았다. 시간의 상대성을 느끼기에 아주 좋은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가차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데이터 공부를 하세요!'라고. 점심시간 1시간이 10분 만에 끝나는 걸 매일 같이 느꼈다. 확실히 다른 세계다. 업무의 많고 적음, 야근의 강도 같은 건 그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일 욕심'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업무가 많다. 거기다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있다면 야근은 필연이다.


이 곳이 다른 세계인 이유는 빠르게 실패하고 털어버리고 새로운 걸 시도하고 분석하고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와? 개발자와. 개발자 중심 스타트업에서 개발 제외한 모든 것에 린하게(빠르게, 위키백과) 도전하다 보니 나의 커리어는 없어졌다. 개발이 아니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느낌. 원래도 마케터라고 하기에도, 기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포지션이었지만 최근 1년 사이에 애매함은 한층 더해져 이제는 아예 '콘텐츠 디렉터'라는 어디에도 없는 포지션을 만들어 버렸다.


최근에는 새로운 앱 론칭하기 실험(?)을 동료 2명과 진행 중이다. MVP(최소 존속 제품: 이게 시장성이 있겠구나, 수요가 있겠구나 하고 만드는 가장 작은 단위의 제품 또는 서비스, 예시)을 구축하고  UX를 기획하고 무료 폰트를 찾고(구글 무료 폰트 강력추천!) 앱 로고를 만들고 기타 등등.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는다. 어떤 미션이 주어져도 우물쭈물하지 않는다(미션이 없는 게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 스타트업 1년 차, 회사도 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로스 한(전례 없는, 본적 없는) 성~장!


*

2년 차가 된 기념으로 플라잉 요가를 시작했다.

모든 게 없어지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이제는 없애야 하는 것들(대표적으로 옆구리에 포진해있는 것들)도 함께 찾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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