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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지내니
By 나란 브런치 작가 . May 08. 2017

나를 인정하기까지 걸린 시간

지금껏 여행의 기능적 의미를 과소평가하며 살았어요. 이제, 인정해야 하는 날이 온 것 같아요.


 지금 이 행복감에 대해 설명할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어제 4박 5일 도쿄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일본 호텔 지하 2층 family mart에서 사 온 하이볼을 마시며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지금. 밀려드는 이 행복감. 여행 후라는 사실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책이 너무 좋아서. 술기운에 취해. 느끼는 행복감과는 분명 다르다고. 세포들이 말해요. 그러니 ‘여행’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youngranna

2011년 1월 1일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시작으로 약 6년 간 3곳에서의 회사생활을 끝내고 두 번째 실업 상태에 놓인 지금.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대체로 행복했습니다. 도대체 왜 행복했을까요? 지금 이 행복감의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대체로 행복했던 이유는 대체로 회사에 있었어요.


첫째,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벗어나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 서울 살이

둘째,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하다

: 연수원 동기들부터 최근 회사 개발자 분들까지

셋째, 내 옆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때 행복하다

: 인턴들이 칭찬해주는 것에도 설레는 선배


한 가지는 회사와 관련은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였고요.


넷째, 책이 일상이라 행복하다

: 페이지 넘기다 잠들기


그리고 오늘 느낀 행복감이 바로 여행.

정확히는 여행 전에는 없었던 '나'에 대한 인정. 그래서 다른 이유들보다 다섯 번째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해 봤어요.


다섯째, 나를 인정할 때 행복하다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매번 후달림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사람입니다. 해본 적도 없으면서 '못해'는 금기시하고 주어진 근로시간 외 오버타임을 밥 먹듯 해대면서 성과를 만들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에게 노동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하게끔 만드는 등 약간의 피해를 주는 사람.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태도로 모든 분야를 건드리는.


어쩌면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전문가에 어울릴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어떤 일을 하든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나갈 수 있는 사람. 그러다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로 전락할 수 있는 사람. 


그래도 그게 나 이니까. 혼란스러워도 지금껏 해온 이것저것을 앞으로도 해나가며 작은 결과물을 꾸준히 만들어 삶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 인 거죠.


이렇게 인정하기까지 6년 4개월이 걸렸습니다. 

 일을 하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거죠. 그리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뭐든 될 거야’ 하며 불안의 영역을 회사 일을 위한 시간 투자로 대체하며 산 결과. 삶에 대한 더 많은 불안과 노동에 대한 더 많은 시간 투자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성장’한 셈이죠. 직원으로서는.

그런데

이게 내가 원하던 성장인지

또 다른 종류의 성장도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모두 여행 때문입니다.


끝.

그러고 보니 여행의 기능을 인정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비슷하네요. 입사 후에 매년 여행을 다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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