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 보았다>
영화관 상영작이든 왓챠 플레이 상영작이든 보기 전에는 짧은 감상 평을 통해 일종의 확인을 하고 보는 편이다. 두 시간을 보장받기 위한 안도감 같은 거랄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블로그 등에서 긴긴 감상평을 찾아 읽으며 내가 제대로 영화를 이해한 건지 비교한다. 이해보다 공감력이 뛰어나다 보니 영상이나 캐릭터 자체에만 빠져 영화를 보는 편인데 블로그를 읽으면 영화의 주제나 시대 배경, 감독의 의도 등을 추가로 알 수 있어 영화를 더 풍부하게 감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읽기 전에 두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책 띠지에 적힌 문학평론가 신형철 님의 극찬에 한 번,
SNS에 공유된 일러스트 작가의 그림에 한 번. 너무 좋다고 하면 또 읽기 싫어지는 비뚤어진 습성이 있는데 과감히 버리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는 내가 이 책을 다른 책과 조금 다르게 대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기. 목차 페이지 왔다 갔다 하며 읽기.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읽을까 고민하며 뒤적이기. 읽다 말고 대뜸 영화 보기. 그리고 다시 읽기. 내가 이 책을 읽은 방식이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는 씨네 21 김혜리 기자가 2010년부터 영화 전문 매거진 <씨네 21>에 연재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중 2014년~2017년 1월 개봉했던 영화 일부를 묶은 책이다.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매거진과 비교해 연재물을 묶은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시의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점이다. 매거진을 통해 이 글들을 읽었다면 '지금 당장 봐야만 해. 나중은 늦어'와 같은 느낌이 들었을 텐데 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언제 봐도 좋을 영화 이야기를 모았어. 글자들이 영상으로 보고 싶어 지면 그때 봐도 돼. 꼭 지금이 아니어도 돼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제목이 어디에서 왔나 살펴보니 영화 <캐롤>의 글 제목과 비슷했다.
나는 목차에서 내가 본 영화만 골라 읽었다. 그중에 캐롤이 있었기 때문에 제목이 비슷하네 생각한 것. 다시 확인해보니 읽은 챕터가 15개밖에 안 되네.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총 40편 영화 중에 15개를 봤고 15 챕터만 읽은 셈. (방금 확인해보고 깜짝 놀람...)
가장 재미있게 읽은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그녀>, 윤가은 감독의 생애 첫 장편 연출작 <우리들>이다. <그녀>는 워낙 재미있게 본 영화인 데다가 영상이 주는 힘 때문에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고 환상적으로만 기억한 영화인데 글에서는 주로 인공지능 사만다가 인격인지, 소비자의 니즈를 영악하게 채우는 상품인지를 두고 이야기한다.
사만다는 인격인가? 아니면 소비자의 니즈를 영역하게 채우는 상품인가? 스파이크의 각본은 이 질문을 매우 정교하고 꾸준하게 해체한다. 일단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첫 대면을 보자. OS를 설치하자 원하는 성별을 묻고 여성을 선택하자 "어머니와 관계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철저한 고객 맞춤형 상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곧이어 자기를 소개한 사만다는 "하드 좀 봐도 될까?"라고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건 미묘하다. 사만다가 단지 OS라면 사용자 입장에서 그녀가 받은 편지함을 정리하고 하드디스크를 들여다보는 일을 꺼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시스템 조각 모음을 하겠냐고 컴퓨터가 물어올 때 얼굴을 붉히거나 하지 않는다. 즉 "봐도 될까?"라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멘트는 OS가 스스로를 인격체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p144
<우리들>에서는 비슷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에는 어른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 나도 어릴 때 나에게 벌어진 중대한 일. 아이스크림을 함께 사 먹을 용돈이 부족해서 친구들과 놀 때 보인 유약함 등을 혼자 해결하고 싶었다. 물론 혼자 해결이 안 되니까 밤에 이불속에서 울다가 아침에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고. 엄마는 영문을 모르니까 답답해하고···
선생님의 칭찬보다 친구가 돌려준 시선 하나가 하루의 행불행을 좌우하고 엄마의 꾸지람보다 친구의 몇 초 침묵이 하늘을 무너뜨린다. 본인들의 인정 욕구와 서열화를 감당하기에도 하루가 짧은 것이다. 마음이 찢기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친구와의 분쟁을 결코 (충분히 선량한) 교사와 부모에게 의뢰하지 않는다. P172
아직 보지 않은 영화를 읽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개봉 당시 관심은 있었지만 보지 않았던 영화 <4등>을 읽었다. 인권 영화로 기획된 프로젝트 영화라고 설명했다. 정지우 감독과의 인터뷰 일부가 실려있는데 제일 많이 나온 말이 '맞을 짓'이었다고 하는 부분이 처음에는 "뭐지?" 하다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곧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나도 생각해 보게 된 '맞을 짓'.
(정지우 감독) 여고생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여고사를 찍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체벌 사유는 점심시간에 학교 담을 넘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기를 반복했다는 거였다. '맞을 짓'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더라. 거기서 이 영화의 질문을 정리했다. 몇 번째 담을 넘을 때부터 맞을 짓인가? 술까지 마셔서 맞을 짓인가, 담배만 피워도 맞을 짓인가? 이 물음의 답은 완전히 자의적이고, 체벌한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용인하는 제3자들이 정확히 어디 서 있는지를 드러낸다.... 중략... <4등>을 찍으며, 금지하는 방식의 언어로는 폭력에 관대한 문화를 멈출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때리면 안 된다"가 아니라 "맞을 짓이란 없다"로 시작해야 한다. 맞을 짓이 없다면 때리지 않고 가르치는 법을 생각해야 한다. P124
총 16 챕터를 읽었다. 16챕터도 사실 한 번에 다 읽지 못했다. 책을 읽던 중에는 윤가은 감독의 단편 <콩나물>이 보고싶어 휴대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돈을 내고서라도 보려고 했는데 단편이라 그런지 유료로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영화 <부산행>의 아역 김수안의 더 꼬꼬맹이 시절을 보게 되다니.
<콩나물>을 보고 나니 발동이 걸려 새벽 내내 왓챠 플레이를 뒤적뒤적이다 다시 책으로.
아직 스물 네 개의 읽지 않은 영화가 남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그 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보게 해 준 책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