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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Jun 23. 2022

비가 내린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순간 내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엄마는 장마에 가셨다. 장례식을 하는 내내 주룩주룩 굵은 비가 내렸다. 장례를 마치고 일주일 만에 회사에 복귀한 후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핏기 없는 파리한 얼굴을 한 채 회사 로비에 쪼그리고 앉아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으면 가끔 그 때가 떠오른다. 넋이 반쯤 나간 채 물끄러미 바라보던 빗줄기가, 그걸 바라보며 풀이 죽은 채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생각했다. 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세상이 떠내려 가도록 더 많이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비가 내린다. 엄마가 막 내 곁을 떠났던 그 때처럼, 엄마의 온기가 남아 있던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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