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겪어 보기 전까지 믿기는 어려운 말들이 있다.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나."
"(너무 슬프고 괴로워서)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배불러."
나이를 이만큼 먹으니 대충 다 겪어 본 것 같은데,
꼭 겪어 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게 있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꼭 살아오신 것 같아요."
대체 어떤 경험을 하면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오신 것 같을까?
그건 정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왔다는 말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도플갱어처럼 엄마랑 꼭 닮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나? 난 믿지 않았다.
흔히 어떤 음식을 맛보고는 엄마가 해 주신 음식 같다고 감탄을 하며 이런 말을 하는데,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를 과장되게 말한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과장된 거짓말 같은 말을 내가 몸으로 느꼈다.
그것도 아주 무방비상태에서 세게 맞았다.
큰 이모, 그러니까 엄마의 큰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이모가 이모 노릇도 못하고 항상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부모 노릇'도 아니고 '선생 노릇'도 아니고 누가 '이모 노릇'까지 요구한다고
그걸 그렇게 미안해하신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촌부인 자신이 부모 없는 조카에게 힘이 돼주지 못하신 게 못내 안쓰럽고 미안하신 모양이다.
사실 내 나이면 이모에게 뭘 받는 나이가 아니라 뭘 드려야 하는 나이이다.
그런데도 이모는 아직도 나를 아빠 없이 크던 어린 조카아이로,
갑자기 엄마도 잃은 불쌍한 조카딸로 보시는 것 같다.
그래서 시골 이모 집에 들를 때면 트렁크가 넘쳐 나도록 뭘 그렇게 싸주시는데,
얼마 전엔 바빠서 못 들르니 이모 딸인 사촌 동생을 시켜 또 뭘 이것저것 보내주셨다.
직접 농사 지어 보내신 그 많은 야채들과 직접 해 보내신 음식들 사이에 끼어 있던 작은 봉투 하나.
그 안엔 양념이 된 황태 무침이 들어 있었다.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고 사촌 동생이 전했다.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음식도 아니었다.
내가 30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으니 20대였던 내가 즐겨 먹는 음식도 당연히 아니었다.
냉장고에 며칠 있던 황태무침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전 직장동료 언니와의 술자리 안주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한 젓갈 입에 넣고는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내가 꺼내서 볶았는데,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셔서 직접 요리해 주신 것 같은 그런 맛이 났다.
내 입 안에서 나는 맛과 향이 내 머릿속으로, 내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러냈다.
어찌나 강렬하게 느껴지는지 엄마가 손에 닿을 것 같은 '맛이 났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걸 잊었다면,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모는 엄마랑 입맛이 비슷하셔서 음식 간도 내게 딱 맞고 뭐든지 맛있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은 지난 16년 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목이 메는 데 행복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생각했는데.
엄마를 만나 말하고 듣지는 못해도 엄마가 내 옆에 왔다 가신 것 같아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