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부를 시작했다

통대 입시

by vitacura

혼자 하는 공부가 잘 되기는 만무하다.

다행히 학원비 등을 매우 아까워하는 타입이라 혼자 하지만,

학원 숙제는 꼬박꼬박 제출하고,

하루 수십 장씩 뿌려주시는 자료만큼은 한 번이라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나는 진정, 한 점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적막한 거실에 큰 교자상을 펴고 앉아 수업 자료를 복습하다가

꾸벅꾸벅 졸기 일쑤고,

밥을 먹어야지,

커피를 마셔야지,

빨래를 널어야지 하는 핑계로 수 십 번씩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무엇보다 정해진 기한 없이 공부를 하려니 긴장감이 없었다.

올해 시험을 볼 수 있을지 내년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타이트한 입시 준비를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일 년 간 일주일에 세 번 수업 듣고, 한 번 첨삭 지도받는 생활을 했다.

당시에는 통대 입시 온라인 강의가 전무하던 시기라 선택의 여지없이 헤럴드 학원에 등록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강의이다.

젊은 선생님이 혼자 진행하시는 수업이었는데,

이 많은 수업 자료를 혼자 어떻게 다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자료도 풍부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통대코치 강현주와 함께하는 중국어 통번역대학원 입시 : 네이버 카페 (naver.com)


1차에 붙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던 때여서

혼자 2차 준비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는데,

어떻게 운이 좋아서

귀국 후 바로 본 한국외대 통번역 대학원 1차 시험에 합격을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너무 감사하게도 학원에 나와서 일주일이라도 면접 준비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2차에 똑떨어져서 은혜에 보답을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

아직도 강의를 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시는 분이니 어디서든 이 분야에서 성공하셨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좀 더 계획적으로,

더 집중해서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

외국에 혼자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내키는 대로 공부를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1차에 붙을 수 있는 실력이 있었음에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2차 준비는 1도 하지 않았다.

그 어려운 1차 시험에 붙고도 2차 면접에서 똑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통대 입시에 유명한 학원도 좋고,

유명한 강사도 물론 좋지만,

결국 최종 결과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 당연하고도 뻔한 사실을 2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이를 먹어도 모르는 것,

모르는 척하는 것,

몰랐던 건 계속 그렇게 모른 채 실수를 하고 대가를 치르며 깨닫는다.


그렇게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 후 통대 입시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1) 직장을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