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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Jun 07. 2021

만화같은 야구선수 오타니, 그의 16살은...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26>>


큰 체격에 선한 얼굴, 거기에 엄청나게 뛰어난 실력까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오타니 쇼헤이의 뉴스가 연일 화제다. 프로야구에서 투수로 타자로 동시에 실력을 발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투수로 나와서 마구 삼진을 잡아내고 타자로 나서 또 마구 홈런을 쳐대는 저 모습이란, 아무리 봐도 좀 비현실적이다.


만화 주인공 같은 홈런과 삼진 퍼레이드를 볼 때마다 야구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자꾸 일본 사회와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과 철저함이 느껴져 다시 그를 쳐다보게 된다. 이를테면 야구가 보이지 않고 일본의 스타일이 떠오른다 할까...



뛰어난 체격 조건과 특출난 소질로 학창 시절부터 기대를 모았던 오타니 쇼헤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스로 만든 목표 달성 계획표가 공개된 적이 있다.


지금처럼 유명한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겠지만, 워낙 특별한 능력자로 성장하다 보니, 이 괴물이 16살 어린 시절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야구에 몰두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고교생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사람이 고안해낸 만다라트라는 양식에 따라 자신의 목표와 달성 방안을 기입했다. 정 중앙에 최종 목표를 기입하고, 그 둘레 8개 칸에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하위 목표를 기입하고, 이 8개 하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 방안을 8개 키워드로 기입하는 방식이다.


오타니 쇼헤이가 고교 1년 시절 작성한 계획표




16살 오타니 쇼헤이는 최종 목표로 8개 구단에서 1순위 지명을 받는 것을 설정했고, 그 목표를 위해 몸만들기, 제구, 구위, 스피드, 변화구, 멘탈, 인간성, 운... 이렇게 8가지를 하위 목표로 정했다. 몸만들기, 제구, 구위, 스피드, 변화구 그리고 멘탈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이 야심만만한 소년은 여기에 인간성과 운이란 목표도 추가했다.


인간성과 운도 그가 최종 지점에 이르기 위해 쟁취해야 할 목표로 생각했다는 것인데, 더 재미난 것은 오타니 쇼헤이가 쥐어짜낸, 인간성과 운을 성취하기 위한 실행 방안들이다.


어린 오타니가 '운'을 얻기 위해 해야 한다고 꼽은 건 이런 것들이다.


인사, 쓰레기 줍기, 야구부원실 청소, 심판에 대한 태도, 물건 소중히 다루기, 긍정적 사고, 응원받는 사람 되기, 책 읽기.


쓰레기를 줍고 책을 읽고 인사를 잘하고 심판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해야 운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곰곰이 머리를 짜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성공을 위해선 운이 좋아야 하며 그 운은 성실히 노력해야 얻어낼 수 있다고 믿고 의지를 다졌을 16살 소년의 철저함은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놀랍다고 해야 하나, 상상 이상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오타니 쇼헤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실력은 더 늘고 꿈은 더 높아졌다.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자신은 미국에 갈 거니까 일본 국내 구단들은 자신을 지명하지 말라고,  괜히 지명권만 날리지 말라고 헛물켜지 말라고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오타니의 잠재력과 상품성도 그렇고 오타니의 의지도 워낙 강했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은 지명을 포기했는데, 홋카이도에 근거지를 둔 구단, 닛폰햄 파이터스는 달랐다.


왜 굳이 무리한 지명을 할까 했는데, 닛폰햄은 오타니 못지않은 치밀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치밀한 오타니를 상대로 치밀한 닛폰햄이 사람 마음을 돌리는 치밀한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닛폰햄은 지명 뒤 오타니와 부모를 만나러 가면서 거의 연구 논문 수준의 한 자료를 들고 갔다.

제목은 “오타니 쇼헤이의 꿈을 향한 길잡이” –일본 스포츠에서 어린 선수의 해외진출 고찰-


지명 뒤 오타니와 가족을 면담한 닛폰햄 감독과 관계자


오타니 쇼헤이가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성공과 실패 가능성을 매우 실증적으로 자체 분석한 자료를 만들어 오타니 쇼헤이에게 브리핑을 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역사를 낱낱이 분석해서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갔다가 성공한 경우가 드물다는 근거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투수 타자 동시 활약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완성해야 미국 가서도 가능하다면서, 지원을 거듭 약속했다.


오타니 설득 자료에 들어있는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내역


오타니 쇼헤이는 구단과 맨 처음 만났을 때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는데 약 40일간 논리적이고 차분한 설명에, “마치 내 입장을 같이 고민해주는 친척 같다”는 소감을 밝히고는 닛폰햄 입단에 합의했다. 그리고 구단이 제시한 일정대로 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경험과 성적을 발판으로 미국에 진출해 지금 만화 같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오타니의 자기 관리 방식, 닛폰햄의 설득 그리고 미국에서의 활약,,, 이 일련의 과정에서, 왠지 무표정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치밀하고 꾸준하게, 상대가 뭐라 하든 집요하게 밀고 가는 일본인들의 의지가 훅 다가온다. 아무리 봐도 우리의 ‘진취적’ 뜨거움과는 어딘가 결이 다른 차갑고 서늘하고 고집스런 그 무엇이 느껴진다.


제3국에 가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장 유사한 점이 많고 비슷한 느낌을 서로 많이 받는다고 흔히 얘기하지만, 가장 밑바닥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기질’의 충돌이 상존하는 느낌은 피할 수없다. 아무래도 우리의 방식은 그들과 비교하자면, 좀 더 직관적이어서 자연스럽고 좀 더 무계획적(?)이어서 감동적인 거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인생에서 ‘꼭 항상’ 치밀하고 철저하고 계획적이어야 하나, 그럴 필요가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까지도...


아무튼 오타니의 활약에 다시 박수를 보내며, 참으로 일본적 장점과 특징의 총화라는 느낌에 난 그를 또다시 쳐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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