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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by 이영선

다음 날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는데, 전날까지 조용해서 내가 여행을 잘못 왔나 싶었던 도시가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머무는 호텔 로비와 식당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설치되었다. 주중이었는데 여행객들이 로비에서 손에 전시장 안내자료를 하나씩 쥐어 들고 다들 도시를 헤매어 걸어 다닐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중된 다운타운의 2마일 반경 내에 여러 전시작품들이 실내외로 구석구석 비치되어 있었다. 안전하게 걸어도 되는 도시, 도시 곳곳의 생활 풍경 속에 숨겨진 작품들을 보물 찾기를 하듯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도시를 재발견하게 되는 페스티벌이었다.

전시 정경과 길에서 몇 년째 전시 참여 중인 지역 예술가
병뚜껑으로 만든 설치작품과 뮤지엄 외벽에 뮤지엄 내부를 그린 작품


이 페스티벌은 기존의 갤러리 시스템에 반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모든 전시 공간은 전통방식의 갤러리가 아닌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기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이 페스티벌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다르게 공존한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에는 미술관의 내부가 아니라, 미술관의 벽면, 미술작품이 아닌 다른 전시관이었던 공간을 작품 전시를 위한 실험적 공간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주류 비주류의 구분을 없애려는 '민주적인' 페스티벌의 기획에 의미를 더한다. 호텔로비, 카페, 우체국 앞의 우체통 속, 벽면의 틈새, 레스토랑, 은행 외벽, 가게의 창문, 건물 복도, 주차장, 교회, 빈티지샵, 무용연습실 등에 나름의 다양한 방식으로 온갖 작품들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전시에 신경을 덜 쓰는 게 아니다. 작품은 소규모의 평면작품부터 대형 설치물과 인터렉티브 퍼포먼스까지 다양하며, 작품의 주체와 큐레이션도 ‘모두가 예술가이고, 모든 곳이 전시장이 될 수 있다’는 축제의 취지처럼 다양하다. 또한 그렇다고 말 그대로 아무나 아무것을 갖다 붙이는 식의 동네 발표회와 같은 퀄리티를 상상한다면 그것도 대단한 오해이다. 이 전시로 인해 전 세계 다양한 예술가들이 다양한 교류를 시도하는 한편 (올해 43개국 이상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고 들었다) 도시의 인지도 상승과 관광객의 유입, 지역 경제수익 증가 등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


나는 호텔에서 나와 가장 먼저 페스티벌 기획 사무실에 들러서 뭔가가 한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받아왔다. 그 안에는 각종 쿠폰과 안내자료, 가위, 색칠도구 등의 잡동사니가 있었다. 그리고 목에 걸고 다니는 커다란 이름표도 있었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예술가들은 이 목걸이를 착용하고 도심을 돌아다닌다. 나는 원래 출입증 같은 걸 몸에 착용하는 걸 싫어해서 손에 들고 다니곤 하는데, 낯선 이곳에서 참여 예술가라는 것을 나타내는 이 목걸이를 착용하기가 왠지 더 민망하고 쑥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목걸이의 끈만 길게 나오도록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왜 목걸이를 하고 다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야 내가 예술가인지 알고 사람들이 내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묻기도 하고 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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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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