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년)는 비록 귀족 출신 가문은 아니었지만, 그의 가문 사람 중 일부는 피렌체 정부의 요직을 맡았을 정도로 꽤 권세를 떨쳤다고 한다. 그러나, 가문의 몇몇 사람들이 음모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이하면서 점점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증인이었던 마키아벨리의 아버지 베르나도 마키아벨리는 부채자로 낙인찍혀 세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졌다. 당시, 무역과 상공업이 발달했던 이탈리아에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았을 정도라고 하니 마키아벨리는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을 공부했던 아버지 덕분에 마키아벨리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 나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키아벨리에게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게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인쇄업자를 찾아가 9개월 동안 로마사의 지명색인을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증정본을 받아 수년간 제본을 한 다음 당시 17세의 마카아벨리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책을 평생 곁에 두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역사를 돌아보며 냉혹하고 참담한 현실에 처해 있는 자국의 상황을 직시하였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루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숭고한 미래를 꿈꾸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뇌했던 마키아벨리였기에 그의 사상이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1512년경 집필되었지만, 당시 금서로 지정되어 1532년이 되어서야 출간된다. 그러나 출간 이후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비열한 악마의 지침서’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라고까지 불렀다. 심지어, 마키아벨리의 무덤을 파헤치고 유해를 길가에 버리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군주론>은 출간된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정치를 도덕과 종교에서 분리하는 데 기여한 근대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기였다. 특히,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공국 및 공화국으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 자랐던 피렌체 공화국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활동했던 곳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엄청난 강국이었지만, 자국의 군대가 없어 외교와 용병에 나라의 운명을 의존해야 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양철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던 추상적 윤리와 종교로부터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담대한 주장을 펼친 인물이었다.
책 속으로 들어가며...
이 책은 <군주론>에 제시된 여러 가지 통치술을 아래와 같이 6개의 분야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그 분류가 상당히 현실적이어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1.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2. 리더를 리더답게 하는 것들
3.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 법
4.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법
5. 경쟁에서 이기는 법
6. 변화를 주도하는 법
이 책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장점은 군주론의 내용을 근현대의 폭넓은 역사적 사례와 최근의 기업 경영사례를 덧붙여 설명하고 있어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중세 유럽의 복잡한 역사를 몰라도 <군주론>을 이해하는데 거부감이 적다는 점이다. 마치 현대판 마키아벨리의 지침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중에서 몇 가지 새겨들을 만한 가르침을 소개해볼까 한다.
<군주론 12장>에서는 용병에 의존하는 국가는 장래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듯이,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실제로 피렌체의 정규군을 창설하여 상당한 전과를 거두기도 했는데, 이는 과거 로마가 용병을 고용하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시민군 체제를 유지해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위기 때마다 외세를 활용해 권력을 유지하고자 정치적 기반은 물론 조선의 자주성을 무너뜨린 고종의 사례를 제시한다. 고종은 동학혁명을 제압하기 위해 일본군을 이용했고,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로 도망갔다. 이처럼 강한 군대를 보유하지 못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대야 했던 대한민국의 장구한 역사를 보아도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조선에는 왜 마키아벨리 같은 인물이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마키아벨리처럼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실천한 인물들을 많이 있었다. 특히,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동호문답>은 조선의 개혁방향과 과제를 이야기 형식으로 작성하여 1569년에 선조에게 바친 책이다. 비슷한 시대에 쓰인 책이지만, 군주론과는 확연히 다른 정치사상을 논하고 있다. 오히려, 군주 위주의 통치술과 덕목을 열거한 <군주론>보다 신권과 왕권의 조화로운 정치에 무게를 둔 <동호문답>이 더 뛰어난 고전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변화를 주도하는 법>에서 소개하고 있는 군주론 제25장의 내용도 인상 깊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제25장에서 "시대와 상황이 군주에게 적합하면 융성해지지만, 시대와 상황이 변했는데도 군주가 자기 방침을 바꾸지 않으면 망한다. 그러나, 인간은 타고난 성질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거기서 헤어나기는 게 어렵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에 적응하는 현명한 인간은 흔치 않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린란드에서 생존에 실패한 바이킹과 성공한 이누이트족의 사례가 책에 등장한다. 빙하기가 찾아오자 바닷길이 얼면서 그린란드 원주민들은 노르웨이로부터 식량과 목재 등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환경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린란드에 거주하던 바이킹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 살다가 결국 멸종되었다. 반면, 이누이트족은 바다표범의 기름을 태워 난방과 조명으로 활용했고, 먼바다로 나가 고래를 사냥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것처럼 피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기존의 관성에 의존하지 말고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책 밖으로 나오며...
처음에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신기했다. 그러나,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내가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군주론>의 내용을 너무 가볍게 보았고, 고전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불손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날로 먹으려는 심보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고전을 접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중 첫 번째 마음가짐은 고전에 담긴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넓고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중세 유럽 시대를 거시적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고 <군주론>을 쓰게 된 배경과 그 내용을 좀 더 깊게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상식 없이 <군주론>을 읽게 되면, 왜 이 책이 유수 대학의 필독 고전서로 선정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마키아벨리를 언급하는 사람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비난하며, 현대 민주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불순한 사상을 지난 사람이라는 편협한 평가를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기 쉬울 것 같다. 따라서, 고전을 읽기 전에 반드시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지배했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적 허영심이라는 착각의 늪에 빠지기 쉽다.
고전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그 시대를 가장 잘 대표하는 사상을 담은 기록이다. 즉,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인문고전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책들이다. 고전 속에는 한 사람이 평생 처절하게 고민했고, 때로는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적 도전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지혜가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원 강사로부터 핵심강의만 듣고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안일한 태도로 고전을 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꼭 고전을 읽을 때만 필요하기보다는 지식을 탐구하는 데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면, 본인이 충분히 조사해 보고 고민해 본 다음 그 분야의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명쾌한 질문이 떠오르고, 이 질문에 전문가는 내가 원하는 명쾌한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한 것처럼, 고전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세번째 마음가짐은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마음가짐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르침의 특징은 그 당시의 패러다임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다음 세대의 상식과는 통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위대한 사상가 또는 필독 고전으로 선정된 인물과 책들을 보다 보면 “그 옛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며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를 연구하는 조직의 구성원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관 또는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도 지금의 나를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나와 생각이 다르고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주장에 나를 자주 노출시키는 것이다. 마치 변이가 발생하여 종의 진화가 이루어지듯, 다소 이질적인 외부의 자극에 의해 그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패러다임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게 하는 방법을 추천드린다.
그렇다면, 약 5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마키아리가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무엇이었일까? 너무도 당연한 가르침일 수 있겠으나, 이 책의 저자가 책 속에서 밝히듯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이상을 추구하되, 발은 땅에 딛고 현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가르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