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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나의 행복 압정들은 무엇일까?

by 미래몽상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에서 서은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을 읽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독서모임 회장님의 추천과 회원들의 결정에 따라 다음에 읽을 책이 선정된 날 다행히도 난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서둘러 퇴근을 하고 곧바로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교보문고를 향했다.


행복의 기원은 10년 전 초판이 발행되었을 때 읽었던 책이다.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문구는 "행복의 즐거움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이다. 그 당시 인지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행복'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찾아 듣고 유명한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김경일 교수의 <지혜의 심리학, 2017>,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 2015>,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 2021>과 <굿라이프, 2018> 등이 나의 서재에 담겨있는 대표적인 책들이다.

이번에 개정판을 다시 읽다 보니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했다는 점이 놀랍고 새로웠다. 10여 년 전에도 그랬었나? 그랬다면 난 왜 이번 개정판을 읽으며 알게 되었을까?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보며 <행복의 기원> 초판을 다시 펼쳐보았다. 혹시나 책 속 어딘가 진화심리학을 언급한 페이지에 내가 밑줄을 긋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놀랍게도 10여 년 전 출간한 초판의 책 표지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생존과 번식'이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목적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깨달은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진화의 산물이라는 표현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다윈 선생님을 그때는 잘 알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이번 개정판을 읽기 전에 존경하는 최재천 교수님의 <다윈 지능>과 <다윈의 사도들>을 거쳐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번 개정판은 다윈 선생님을 자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교수님은 처음부터 접근했었는데, 내가 그 당시에는 진화론이나 성선택설 등에 대해 잘 몰랐던 것뿐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윈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종의 기원>을 읽으며 달은 사실인데,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다윈을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다윈을 만나기 이전으로 이제는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다윈의 위대하면서도 너무 간결하고 따뜻한 이론이 심리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잠시 궤도를 벗어난 것 같아 <행복의 기원>으로 다시 돌아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서은국 교수님의 책은 강연만큼이나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밌는 비유들이 많다. 특히,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특유의 위트가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비유는 제6장의 제목인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라는 표현이다.


아이스크림은 냉동실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집어넣지 않으면 언젠가 녹아서 사라지게 된다. 인간의 경험도 아이스크림처럼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심리학적으로는 '적응'이라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책을 읽기 전 또는 읽고 나서 이렇게 글로 나의 생각을 정리할 때면 유튜브를 자주 찾아본다. 분명 누군가는 나보다 그 책을 먼저 읽고 감상평을 요약해 주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남들보다 앞서 무언가를 먼저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행복의 기원>과 이 앞전에 읽었던 <인생의 의미>를 검색했더니 언제부턴가 동기부여와 관련된 영상들이 추천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이었더라면 별생각 없이 영상 속 조언대로 살아보려고 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무언가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남들이 뭐라 해도 신경 쓰지 말고 나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인내하며 견디고 버텨내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추천된 유튜브 영상 속 조언들이 잘못된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의 검색 기록에 근거해 유튜브가 추천한 영상들도 아리스토텔레서의 목적론에 기반한 추천 알고리즘의 산물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유튜브가 추천해준 그 어떤 영상에서도 기쁘고 즐거운 순간의 빈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있지 않았다. 그저 "도전해라,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는 없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아직 성공하지 않은 상태니 실망하지 마라" 등등 주옥같은 조언들이었다. 그것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조언들이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다 맞다. 다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정말 행복해지는 걸까?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 행복해할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했던 건 다름이 아니라 '나의 행복 압정들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저자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의 즐거움들을 더 자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밟을 때마다 고통을 느끼는 압정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행복 압정'을 많이 만들어보라고 추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나는 어떨 때 가장 기쁘고 즐거운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행복이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고, 행복한 사람은 즐거운 정서를 남들보다 더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즐겁고 기뻤던 경험들은 매우 많았다.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지금까지 기억되는 순간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지 그 순간의 정서는 선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 있고 지금도 매우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돌이켜보기로 한 시점을 먼 과거가 아니라 지금 또는 조금 전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얼마 전 아내와 둘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라 어디를 갈지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군데 핫플레이스를 가보기로 했는데, 그중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로미뮤직하우스라는 LP카페와 서귀포시 표선읍에 있는 표선성당 바라본 멋진 하늘은 지금도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기억은 LP카페에서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 내가 속으로 했던 다짐이다. 당시 나의 상황은 24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는 전역지원서를 제출하고 다음에 다닐 직장의 최종 채용 통보를 기다리고 있을때였다. 불안하고, 두렵고, 그동안의 군 생활이 허무하게 느껴지던 복잡한 상황이었다. 해질 무렵 도착한 로미뮤직하우스에서 각자가 고른 LP판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실내 모든 불이 꺼지더니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노랫말에 귀를 기울였다.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라는 노랫말에 큰 위로를 받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노래가 끝나고 불이 켜질 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받은 작은 위로와 긍정적인 느낌은 다음 주 출근과 동시에 사라지겠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겠지.. 난 또 지쳐가겠지... 그럴 때마다 오늘이 생각나겠지.. 그러니, 오늘처럼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경험들을 자주 만들어야겠다.'


마치 <행복의 기원>을 읽었던 사람처럼 다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초판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행복의 빈도'가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 개정판을 읽으면서 그때의 순간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리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그때의 정서와 기분도 점점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때의 좋았던 감정들이 선명해질수록 지금의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다. 행복해진다.


그리고 어제저녁 집에서 편한 자세로 온전히 독서에만 집중하며 <행복의 기원>을 읽고 있던 순간과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기분을 곱씹어 본다.


평소 책을 자주 읽고 싶어 출퇴근 전후 30분~1시간 정도를 독서와 사색의 시간으로 보내려고 했다. 꾸준히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한 다짐을 지켜왔다. 그런데, 매번 을 읽을 때마다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있었다. 첫 번째 불편함은 나에게 한 다짐을 지켜야 한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에 사로잡혀 억지로 읽고 있다는 불편함이었다. 마치 나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에게 실망할 것 같은 부정적 정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두 번째 불편함은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불편함이었다. 일찍 출근해서 책을 읽다가도 몇 분이 지나면 자꾸 시계를 보게 되고, 한두 명씩 동료들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PC를 켜고 회사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공적인 업무시간에 사적인 취미를 즐기고 있다는 걸 들킨 것 같은 사람처럼..


그런데 주말 저녁에 강아지 산책도 끝내고, 저녁 식사랑 설거지 등 집안일도 마치고, 더군다나 집 앞 헬스장에서 기분 좋게 운동도 마친 상태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내 책상에 펼쳐진 책을 보는 순간 너무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어떠한 의무감도 없었고, 시계를 볼 필요도 없었고, 누구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었다. 마치 마키아벨리가 즐겼던 고독 속 독서의 희열 같았다. 마키아벨리는 관직을 잃고 산탄드레아 시골집에 칩거하고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와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후 서재로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 저녁 내가 경험한 순간은 마키아벨리 정도의 경건함은 아니었지만, 업무에 시달리고 퇴근 후 회식에 지쳐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기분으로 독서에 몰입할 때 느낄 수 있는 자유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두 번째 <행복의 기원>을 만나면서 이전보다는 좀 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물론, 10년 전의 나 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성숙했을 것이고, 그만큼 더 많은 경험들을 겪었을 것이다. 정말 우연이지만 참으로 다행인 건 지금의 내 처지가 첫 번째 <행복의 기원>을 읽었을 때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난 이제 무거웠던 군복을 명예롭게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소위 희망고문에 시달리기도 했고,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오랫동안 재활을 받기도 했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신념을 포기하려 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나를 설레게 하고, 나를 기쁘게 했던 순간과 경험들은 무엇이었는지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고, 지금도 나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원동력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다. 내향적인 성격인 내가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던 건 어쩌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행복 압정 중 하나는 당연히 내 주변의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압정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의 빈도를 높일 수 있는 나만의 행복 압정들을 말이다. 마치 내 주변이 온통 행복 압정들도 가득한 지뢰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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