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동아리에서 선정한 2025년 새해 첫 책은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이다. 얼마 전 세바시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자는 한때 잘나가던 개그맨이었다. 어느 날 큰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기적처럼 살아났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는 답 없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1,00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독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업도 여러 번 했고 실패도 많이 해봤다고 한다. 독서를 통해 얻은 깨달음, 실패를 체험하며 얻은 성공의 지혜들을 고스란히 이 한 권에 담았다. 저자는 수많은 고전을 읽고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딱 한 가지 확실한 꺠달음을 얻었다. 예전부터 확신하고 있었지만 마치 확인 사살을 하는 기분이다. “독서는 언제나 옳다”
<고전이 압했다 (고명환, 2024)>
책 제목에 ‘고전’이라는 단어가 무척 반가웠다. 분량도 많지 않은 편이라 더 기대되었다. 한 번쯤 들어본 고전서를 왠지 쉽게 설명해줄 것 같았다. 개그맨 출신 작가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기적처럼 살아난 작가의 굴곡진 삶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기대감은 더 컸다. 일반인이 들어도 이해되는 평범한 언어나 날것의 표현들로 고전에 담긴 지혜를 쉽게 들려줄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다. 내가 예상했던 고전들이 등장하지 않아서였다.
고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고전은 다 읽었다! 보다 아직도 읽고 있다! 고 답해야 하는 책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전은 시대의 유행을 타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고상한 척하기에 좋은 책을 고전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편협했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과 작가님이 생각하는 고전은 다를 수 있다는 너무도 단순한 진리를 난 왜 몰랐을까? 저자는 고전이 오래전에 쓰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읽고 깨달음을 얻고 인생에 적용하고 다시 알고 싶어진다면, 그 책이 나만의 고전이라고 정의한다.
작가의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 무엇을 읽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읽었는지가 더 중요했다. 최재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거라고. 책 속에 등장하는 왠지 유식해 보이는 문장들, 유명한 사람의 명언, 고상한 이론들은 무엇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그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언 속 담긴 철학이 무엇인지, 고상한 이론은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실천해보고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다. 저자도 고전은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맨스 소설 읽듯이 읽으면 안 된다. 읽고 또 읽고, 받아 쓰고 생각에서 자신에게 맞는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p.135).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고전서 중 내가 읽은 책은 딱 세 권밖에 없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미하일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다. 고작 세 권이지만 나름 빡세게 읽었다. 지식도 얻었고 지혜도 터득했다. 그러나, 고명환 작가님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난 꾸준하게 읽지 못했다. 무엇보다 읽고 깨달은 걸 실천하지 못했다. 빡세게 읽고 깨달은 지혜를 더 빡세게 실천했어야 했다. 그래서 난 고전을 읽었다고 자부할 수 없다.
책 속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는 임계점이었다. 스스로 나의 한계를 두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바심이 나고 걱정되면서도 계속 책을 읽어보라. 임계점을 뚫을 때까지...”라는 문장이 있다. 임계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특정 온도와 압력을 의미한다. 끓는점이나 어는점이 이에 해당된다. 고체가 액체가 되고 액체가 고체가 되는 변화의 시점이다. 사회과학에서 임계점이라 하면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저자는 임계점을 한계(limit)로 해석한 것 같다. 무언가 잘 안될 때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임계점을 뚫을 때까지 해라.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물질의 상태가 바뀌듯 나 자신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장 울림이 컸던 단어는 꾸준함이었다. 어느 분야든 임계점을 뚫을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은 꾸준함이라고 하면서, 꾸준함이란 견디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며 하는 의지라고 정의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잘할 수 있는 것 보다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참고로 꾸준함에 대한 굉장히 유익한 영상과 책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안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kth)가 쓴 GRIT이라는 책이다. 2013년에 저자가 TED에 출연해 영상도 함께 추천한다. (https://youtu.be/H14bBuluwB8?si=4gFxDjFlhv_sV1wy)
저자는 꼰대를 ‘지난날의 기준에 맞춰 현재의 세상을 해석하고 남에게 그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물리학자인 김범준 교수님의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가 생각났다. 김범준 교수님께서 꼰대를 아래와 같이 과학적으로 정의했다. 정말 놀라울 뿐이다.
“판단 기준이 형성된 시간과 공간상의 위치를 원점(0,0)으로 정의하자. 시공간의 위치가 원점으로부터 (t,x)만큼 떨어진 지금 이곳의 상황을 (0,0)에 형성된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는 것이 꼰대다.”
독서 동아리 회장님이 이번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던 경험을 나눠보자고 했다. 난 2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작가님이 KBS 대학개그제에 지원했던 경험과 이어서 소개해준 <연금술사>라는 소설 속 주인공 산티아고의 이야기였다.
작가님은 MBC 개그맨 시험에 응시했으나 떨어지고 그다음 해에 홍석천의 전화를 받고 0.1초 만에 KBS 개그맨 데뷔를 결정했다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속 주인공 산티아고는 양치기 일을 그만둔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만두고 겪은 첫 번째 일은 양을 판 돈을 몽땅 도둑맞은 사건이었다. 산티아고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다짐하면서.
나도 비슷한 경험을 최근에 했다. 그래서 큰 위안을 받았다. 대령 진급 발표가 났으나 난 비선 되었다. 이틀 후 전역한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취업 자리가 있다며 지원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왔다. 0.1초까지는 아니었지만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군 생활을 그만두고 완전히 새로운 직장을 다녀야 하는 중요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 이제 전역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 달 후 난 새로운 직장에서 힘들어할 것이다. 어쩌면 후회할 수도 있다. 고통도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견딜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결정으로 만들기 위해 즐겁게 일할 것이다. 임계점을 뚫을 때까지.
두 번째 위안을 받은 부분은 작가님이 고전은 미래의 답안지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얼마 전까지 난 육군이라는 둔중한 조직의 20~30년 후 미래를 디자인하는 부서에서 근무했다. 미래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드디어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남들보다 더 멀리 내다보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그래서 먼 미래를 연구하는 조직은 그만큼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며 고전 필독서 12권을 선정해 월 1회 독서 토론회를 하자고 건의했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싶어 짧은 글을 하나 썼다. 매력적이면서 강렬한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미래를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고 싶으면, 과거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를 제목으로 정했다.
망원경과 현미경
난 작가님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없다. 내가 동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작가님이 세상을 향해 대신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 동아리에서도 다음에 읽을 책으로 작가님이 인용한 고전으로 정했다. 이전 부서에서 2번 토론회를 하고 난 서울로 부서를 옮겼다.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도 내가 떠나면서 멈췄다고 한다. 언젠가 멈췄던 시간이 다시 시작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고전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기대했던 내용들이 처음에 등장하지 않아 실망감으로 출발했다. 끝까지 읽고 또 읽었다. 만족감과 깨달음이 충만한 기분으로 도착했다. 또 한 번 확실히 깨달았다. 독서는 언제나 옳다! 그러니 빡세게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