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전
Embrace II: 인생의 후반전.
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 편히 보내주는 과정, 포기가 상실이 아닌 지혜로 해석되는 과정, 그 가운데 누릴 수 있는 해방과 자유. 인생의 후반전에서 내가 겸허히 맞이하고 있는 삶의 모습들이다. 사십을 넘어설 즈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여전히 그 가능성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것들에 대한 내 해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 삶의 팔 할 이상을 차지했던 삶의 모습들을 점점 과거의 소중한 추억으로 놓아두게 된다. 평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젊은 날의 열정이었겠거니 하며 꽉 쥐었던 손을 이제 편안하게 놓게 된다.
서른 중반을 넘길 때까지만 해도 인생에 후반전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옷을 벗기면 은밀한 욕망일 뿐일 목표에 눈이 먼 상태였던 나는 인생은 전후반 구분 없이 한방일 줄 알았다. 누구보다 빨리, 누구보다 높이 가면 성공하는 인생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직진 코스로만 이뤄지지도 않았고, 아무리 강렬한 바람과 아무리 훌륭한 역량이라도 넘어서지 못하는 깊은 골짜기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알기 전에 나는 어쩌다 이 골짜기를 맞닥뜨리지 않고 넘어가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인생의 성공자인 줄 알았던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어떤 부분은 극복하려고 맘먹게 되고 또 어떤 부분은 그 한계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부분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가진 역량과 내게 남은 힘, 그리고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들과 먼저 지켜야 할 것들과의 우선순위 다툼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일 것이다.
나는 인생의 후반전이 전반전의 연장전이 아니길 바란다. 아니어야만 하고 그럴 수도 없다. 인생의 결승선에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상은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이며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 숫자나 크기로 매겨지지 않는다. 속도나 높이로만 평가받을 거라고 여기는 건 아직도 인생의 전반전에 속한 사람들의 좁은 믿음일 뿐이다. 풍성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안에 갇힌 자들의 무지의 산물일 뿐이다.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허상이라 부른다. 강렬하지만 아주 짧은 맛을 내는 허상. 먹고 나면 또 목마른 소다와도 같은 허상.
인생의 후반전에서 나는 높이 오르려는 욕망을 과거에 묻어두고, 좀 더 나누고 좀 더 듣고 좀 더 사랑하고 싶다. 자유와 해방과 아름다움을 더 발견하고 싶다. 인생과 인간에게 더럽고 어두운 모습들이 많은 줄 안다. 하지만 나 같이 무딘 사람에겐 그런 것들이 내가 가진 혹은 내 주위에 있는 작은 빛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처럼, 인생도 해석 불가능한 것들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순간들을 살아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는다. 눈이 깊어져 가는 과정은 굴곡진 입체일 것이다. 그 면을 따라 묵묵히 전진하는 사람. 발을 땅에 디디고 있지만 눈은 언제나 하늘 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진정 어린 눈물을 자아내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