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예전에 비해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출판시장에 불황이 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현상을 놓고 각박해진 세상, 먹고살기 힘든 세상,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버린 세상 탓을 하며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뭔가 모자란 것 같다.
우선,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현상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단순히 ‘책’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말에 가깝다. ‘글’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예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글을 많이 읽는다. 이러한 변화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과 맞물린다. 사람들은 책을 구매하지 않지만 글은 더 많이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는 그 많은 글은 어떤 글들일까?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신문기사, 검색 결과에 관련된 지식이나 교양 습득 등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다독하는 현상이 우리들의 삶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읽는 행위는 지식이나 교양을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때우기에도, 일분일초가 모자랄 만큼 바쁘지만 아주 짧은 시간 짬을 내어 휴식을 취할 때에도 강력한 도우미가 된다. 그러나 과연 요즈음 우리의 읽는 행위가 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목적들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난 굉장히 부정적이다.
읽지만 읽지 않는다고 표현해야 할까? 읽는 양은 압도적으로 많아졌지만, 질은 확연히 떨어졌다고 표현해야 할까? 시간의 가치는 양이 아니라 질로 매겨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많이 읽는 행위, 그것도 읽으나마나한 공해와 같은 글들에 집중된 시간은 정말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허투루 날려버리는 것과 같아 보인다. 헤세가 간파했듯, 독서의 가장 큰 적은 문맹인이 아닌 다독가라는 이 역설적인 말에 나는 공감한다.
나는 사람들이 글을 조금 적게 읽었으면 한다. 대신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책은 과거의 지혜가 담긴 고전, 역사나 문학, 인문, 철학 등을 말한다.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신문기사 같은 시사적인 글만 읽으며 하루를 탕진하지 말라는 것이다. 섬이 되지 않고 현실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신문을 꼭 읽어야 하겠지만, 신문만 읽게 되면 나는 얕은 지혜와 강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고 생각한다. 시사 이야기를 정치에 직접 발 담그고 있는 사람처럼 매일 업데이트시키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본다. 현실에 깨어있기 위해서 신문만 보면 될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보는 눈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안목 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별력 없는 충동적인 사람이 언제나 일을 그르치는 법이다.
그렇다. 재미 위주, 난이도 위주, 유행 위주 등의 이유만으로 읽을 글을 선택하고 그런 글들을 읽느라 시간을 보낸다면 나는 언제나 요동치는 얕은 물과 같은 현상이 벌어질 뿐이라 생각한다. 그건 다독이라기보다는 중독이다. 깊은 물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조금은 재미없고,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고리타분할지 몰라도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오늘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현상을 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 통찰할 수 있기 위해서다. 공부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그리고 그걸 지향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책을 들자. 책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