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을 경험하는 용기: 코미디가 아닌 유머

by 김영웅

낯섦을 경험하는 용기: 코미디가 아닌 유머.


가끔 어떤 장소에 가면 그 장소가 주는 특정한 감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낯설지만, 그래서 금지된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기도 하지만, 무언가 나를 멈추게 하는 매혹적인 면이 있어 나는 그 감상에 젖어드는 나를 한동안 그대로 내버려 둔다. 낯섦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고, 이는 나만으로 가득 찼던 자기중심적인 눈을 확장시키는 단초가 된다.


낯선 여행지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면 데자뷰랄까 하는, 불특정하지만 나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는 당황스러운 느낌에 노출될 때도 있다. 그 당황스러움이 두려움이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난 그 당황스러움을 반길 줄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 두려움이 아닌 친숙함과 안정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낯섦 가운데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낯섦이 더 이상 낯섦이 아닌 낯익은 그 무엇으로 각인되는 과정.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성숙의 단면일 것이다.


이런 예기치 못한 사소한 경험들은 묘한 힘이 있어 오랜 잔상을 남긴다. 귀신의 집에 스스로 두 번째 방문한 아이의 성장이랄까. 혐오스럽고 멀리 해야만 했던 것들도 놀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띠며 재 각인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끝내 모를 일들이 이 세상엔 너무 많다. 나는 이질감과 혐오감까지 느끼게 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많은 경우는 우리가 그렇게 진중하게 배제하고 배척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궁금하다. 낯섦을 계속 쳐내면 최후에 무엇이 남게 될지. 순수함을 가장한 옹색함과 옹졸함이 아닐지.


변함이 없다는 말의 참 의미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함이란 순진함이 아니다. 변화와 성장을 무시한 채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순진함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 순진함이 어울리지도 않는 권력을 등에 업고 떠들어대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다. 나는 낯섦을 경험하는 용기와 그것의 필요성, 그것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는 변함없음과 순수함을, 고인 물이 아닌 늘 새로운 유입과 방출이 있어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서 발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코미디가 아니라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유머다. 코미디는 궁극적으로 모두를 파괴하지만 유머는 모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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