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장 앞에서 한가한 오후를 보내다
최근 어느 한 중고서점에서 내가 원하던 책 다섯 권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었다 (이런 횡재를!). 하루도 빠짐없이 전국에 산재된 알라딘 중고서점의 재고 상태를 체크하는 나의 수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낚시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평소에 안 잡히던 물고기가 어느 날 갑자기 다섯 마리나 연달아 잡힌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대여섯 권만 더 구입하면 애초 계획했던 재독 프로젝트를 수놓을 모든 책을 갖추게 된다. 전작 읽기를 진행했던, 진행하고 있는 작가의 모든 작품들이 일차 대상이 된다. 도스토옙스키만 해도 일차, 이차 자료를 모두 더하면 권 수로는 스무 권이 훌쩍 넘어간다. 헤세 전집도 열 권이 넘고, 이시구로의 작품도 열 권 정도 된다. 카잔차키스도 더 읽고 싶지만, 중고책으로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 기행문은 아직 구미가 당기지 않아 일차 재독 프로젝트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영혼의 자서전, 이렇게 세 편만 골랐다. 톨스토이 작품은 장편만 다 모았다. 전쟁과 평화를 읽을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요즈음 내 신세를 보아하니 곧 닥칠 아들 겨울방학이나 내년 여름방학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천 페이지를 넘기는 작품을 제대로 느끼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때 독서는 노동의 의미도 띠게 된다.
신학 관련해서도 C. S. 루이스 작품을 열 편 이상 다시 모았다. 유진 피터슨 책도 내가 읽었던 서너 권만 다시 구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나의 신학 지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신학자 (크리스토퍼 라이트와 김근주)의 저서도 절반 이상 모았다. 대충 훑어보거나 발췌해서 읽어보기에 그쳤던 밀리오레의 조직신학 책과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책, 그리고 그렌츠의 20세기 신학, 이 세 권의 교과서는 미국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책장에 대기 중이다. 정규수업이 부재한 나에게 교과서적인 지식은 종종 훌륭한 도움이 된다.
오늘은 혼자서 이런 책들이 모인 두 책장 앞에 앉아 세 시간 정도 느긋한 마음으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했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한 자도 못 읽고, 이 책 저 책 꺼내어 훑어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문제는 시간이다. 과연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의 투자로 재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지속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수백 권을 읽고 감상문도 남기고 책도 썼던 경험이, 그 절박했던 나날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기가 드디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길게 내다보고 음미하며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갈 예정이다. 목적보다는 과정에 주목하며 그 순간의 희열과 전율을 놓치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 혹시 아는가. 그러고 나면 무언가 조금은 달라진 내 자신을 대면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좋겠다. 과정에서 기쁨과 만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