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기
미국에 11년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느낀 많은 이질감들이 거의 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가장 먼저 무감각해진 부분은 놀랍게도 다양성과 획일성의 경계에 대해서다. 다양성은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 절대 알 수가 없다는, 이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를 이렇게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정착한 곳에서 평안을 누리며 오래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야는 좁아지게 된다. 사실 조금 나는 이 사실에 대해서 공포를 느꼈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향해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 다양성을 환대하는 일을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본인이 잘 쓴다고 믿는 스타일의 글이 점진적으로 향상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어쩌면 빈곤한 내면의 저장고 때문이라는 생각.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아 한 곳만 계속 판다고 해서 결코 글이 깊어지거나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 유일한 해결책은 책상 앞이 아닌 책상 밖, 아니 집 밖, 아니 내가 익숙하지 않은 곳, 낯선 곳, 새로운 곳을 경험하는 일에 있다는 생각이다. 애초에 머리를 싸맨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산책을 나서야 한다. 아니, 여행을 떠나야 한다. 일탈을 감행해야 한다. 또 다른 자아를 대면해야 한다. 깊은 글은 풍성함을 갖추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좀 더 깨어 있어야겠다. 좀 더 민감해져야겠다. 자꾸만 둔해지고 무감각해지는 나의 게으름에 채찍을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