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그리고 과정
거칠게 말해서 인생의 팔 할 이상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는 그 운을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 혹은 섭리라고 믿지만 말이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공히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사람들은 아마도 이에 많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운이란 것을 아무렇게나 이해하면 곤란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 혹은 성공이란 과정을 겪게 된 경우 사람들은 겸양의 뉘앙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운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운은 행동하는 자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또에 걸리는 사건을 운의 정점에 놓여 있다고 본다면, 그것 역시 로또 복권을 수중에 넣어야 한다는 선행조건이 따른다. 본인이 구입했든 누군가에게 받았든 어쨌거나 숫자가 적혀 있는 공식적인 로또 복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현상에서 많은 진리를 깨닫는 내가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마침내 바위에 홈이 패이는 순간이다. 끄떡없을 것 같이 견고하던 그 바위가 뚫리기 시작하는 그 전율의 순간은 의미 없을 것 같은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자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 순간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거기서 멈추면 모든 현재가 고달프기 마련이다. 산을 오를 때 저 멀리 보이는 정상까지 계단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경우, 그 끝을 보고 가기보다는 바로 앞의 계단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고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즐기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마찬가지다. 바위가 뚫리는 순간만을 바라게 되면 천천히 떨어지는 물방울의 가치는 오직 바위를 뚫는 데에 희생되고 만다. 과정의 소중함을 모른다면 모든 중간단계는 결과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결과도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 발상의 전환. 나의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의 의미까지 덩달아 챙기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단계까지 오면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운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운 역시 결과론자들의 샛길일 뿐이니까.
#오블완_티스토리챌린지_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