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
낮추기 위해 찾는 여행
세상의 모든 여행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인생도 나의 존재함으로 시작해서 나의 존재없음으로 끝나는 하나의 긴 여행이다. 존재함과 존재없음 사이 역시 작은 여행들로 이뤄진다. 이 세상에 던져진 모든 인간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의 긴 여행과 그 여행을 이루는 여러 작은 여행들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이다.
'유'에서 시작하여 '무'로 끝나는 인생이라는 여행의 이유는 곧 인간 존재의 이유와 맞닿아 있다. 모두가 아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도 모르는 그 이유 말이다. 그러나 그 여행을 이루는 작은 여행들은 저마다 이유를 가진다. 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작도 끝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조절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즉 모든 인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의 긴 여정을 이유가 있고 조절이 가능한 여러 작은 여행들로 채우게 된다. 이로써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인생이라는 긴 여행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무채색의 텅 빈 인생이 저마다 다른 색을 띠며 세상이라는 향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여행의 이유가 있다. 모든 여행의 주체는 나 자신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떠밀려 시작한 여행이라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여행의 의미는 즉각 상실된다. 그리고 의미를 상실한 여행은 공허로 기록된다.
공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아무 의미도 찾아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존재를 묻고 저 너머를 궁금해하며 초월을 꿈꾸는 의미 중독자이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자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나'이면서도 '나'이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인데, 이는 길 위에 수두룩하게 존재하는 ‘나’라는 이름의 깊은 수렁에 빠지기 때문이다. '나'에 빠져 '나'를 잃게 되는 것, 이는 곧 인생을 공허로 가득 채우는 자이며 그의 이름은 교만과 자기기만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길을 걸어가되 나에게 빠지지 않고 나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 인생에 색을 입히고 고유성을 갖게 하는 여러 작은 여행들의 궁극적인 이유이다. 나에게 빠지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나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이 아이러니! 주체가 되지 못한 자는 영원히 타자를 위해 살 수 없다. 희생할 자아가 없는데 어찌 타자를 위할 수 있겠는가. 낮출 자아가 없는데 어찌 겸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를 찾는 여행은 나를 낮추기 위한 준비단계로 소급된다. 궁극적으로 나를 찾는 여행은 나를 낮추는 여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의 존재함으로 시작한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으로, 나를 찾는 여행은 나를 낮추는 여행으로, 나를 낮추는 여행의 끝은 나의 존재없음으로 수렴하는 우리의 인생. 당신은 어느 단계에 속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