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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un 24. 2024

[인생×영화] 소원을 말해봐, 네가 준비됐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1>


나는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 원하는 것도 많다. 원하는 것이 많아 이것저것을 하다 보면 가끔 과부하가 걸릴 때가 있다. 제발 이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세요 빌고 싶다. 요행을 바란다고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소원이 이루어지는 상상은 하지 않는가. 아무튼 소원이 쌓이고 소원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이 쌓이면 스스로 속에서 뭔가 고장 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힘들고 지칠 때 나는 절에 간다.


절에 가 부처님께 소원을 비는 것이냐. 아니. 나는 소원보다도 번뇌를 정리하려는 목적이 크다. 차곡차곡 쌓였던 많은 것들을 덜어내기 위함이다. 그게 고민과 걱정일 수도 있고, 삶의 지혜일 수도 있다. 좋든 싫든 내 의도와 다른 것들이 계속 쌓인다. 한 번쯤은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절 분위기 덕분인지 절만 가면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진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진관사를 갔다. 진관사를 택한 이유는 딱히 없다. 서울에서 갈 수 있는 절을 검색했고, 목록에 뜬 절 중에서 그나마 '산'의 정취가 흐르는 곳이었다. 주말인지라 진관사에는 북한산 산행을 하러 온 사람과 절에 들른 사람, 외국인까지 사람들이 넘쳤다.



내가 갔던 날의 진관사. 날씨가 참 좋았다


연신내역에서 버스를 타고 은평한옥마을에 내렸다. 점점 여름과 가까워지는 날씨 때문에 등줄기에서는 벌써 땀이 났다. 햇볕이 세게 내리쬐어 피부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아직 절 근처도 오지 않았는데 흐르는 땀줄기가 걱정됐다.


전각에 들어가 108배를 했다. 대웅전에서 하려 했지만, 법회가 있고 시끄러웠던 관계로 바로 옆 작은 전각 '칠성각'에 들어갔다. 좌복을 깔고 불전함에 돈을 넣고 108배를 시작했다. 개수 하나하나를 세어보면서 내 마음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때 108배를 하던 도중에도 뒤에서 절을 바라보며 크게 떠드는 사람이 있었다. 소음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외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집중해야 비로소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했기에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108배를 끝내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전각을 나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선글라스를 쓴 아주머니들의 대화였다. “너도 빌어. 부처님한테 평소에 바라는 거 빌어. 우리 딸 결혼해 달라고 할까?” 아주머니들은 끝내 절하지는 않고 가던 길을 갔다. 집중하려 애썼지만, 그때만큼은 마음 한편에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제자다. 인간의 소원도 이루어준다고 해 서민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기도 했다. 그런 나한을 모시는 전각이 '나한전'이다. 진관사에도 나한전이 있다. 소망을 담고 절을 하면 한 개의 소원은 꼭 이뤄주신다고 한다. 직접 들어가 보니 대학 입학, 취업 등 다양한 소망이 담겨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양양 ‘낙산사’에도 소원을 이뤄주는 길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 딱 한 개 정도는 이뤄주신다고 하신다. 낙산사를 몇 번 많이 갔고, 갈 때마다 간절한 소원을 하나씩 품고 간다. 내심 바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어서 그런가, 간절함이 덜해서 그런가. 소원이 한 번도 이뤄진 적은 없다.


그런 의심은 해본 적은 있다. 내가 빌고 있는 것을 들어주시느라 부처님께서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 수많은 사람이 부처님께 소원을 빌고 있을 텐데, 과연 그 소원들 중에서 내 소원이 가장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내 소원이 가장 튈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소원을 빌기만 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도 했다. '내가 과연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건강한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유능하지만 차가운 스트레인지 박사가 나온다. 우연히 사고로 손을 완전히 쓸 수 없게 된 박사는 절망한다. 자신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의사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스트레인지 박사는 다리를 쓸 수 없었던 환자가 농구를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에게 물어 네팔에 있는 수도원 '카마르타지'를 찾는다. 수도원에서 스트레인지 박사가 원했던 소망은 '손을 원래대로 돌려놓기'였다. 그러나 거기서 한 것이라고는 정신 수양이었다. 수술이 아닌 것에 반발했던 스트레인지 박사. 그러나 주술 공부에 매진하고 정신 수양하니 끝내 손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손만이 아니라 모든 시공간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가서, 어떤 사람은 성당에 가서, 혹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곳이나 원하는 사람 앞에 가서 소원을 빈다. 나도 (주로 비우러 가는 것이긴 하지만) 가끔 절에 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빌기도 있다. 나한이 계신 것처럼 진관사에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낙산사에도, ‘소원을 이뤄주는’ 곳이 나온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소원을 비는 것보다 소원이 들어올 수 있는 내 공간을 마련하는 게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 뭔가 바라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가 결핍이 되어있단 의미다. 힘듦, 괴로움, 고난 등의 부정적 감정이 체내에 쌓여있다는 의미다. 긍정적이기만 한 사람은 절대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 (지금 상태가 좋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너무 힘들 때, 내가 무언가를 열렬히 소망할 때, 소망하는 것도 좋지만 소망하는 것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속이 꽉 차 있으면 뱉어내듯, 아무리 좋은 소원이라하여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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