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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문법

by 한아


인생 첫 시험인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를 앞둔 장중딩.

까이꺼, 중학교 내신 아무렴 어때. 꼭 잘 봐야 해?

껄렁거리면서도 걱정이 되기는 되나 보다.


국어 문법이 어렵다고 징징거리길래, 엄마가 도와줄 테니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라고 했다.

영어를 가르쳐 밥먹고 산지 어언 20년이 넘었으니, 영문법이야 이제 눈 감고도 구석구석 훤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국어문법은 영문법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고

배운 지 오래라 가물가물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나도 함께 공부해 가며 알려주었다.


-무조건 다 모르겠다고 하지 말고, 일단 니가 혼자 읽었을 때 이해 안 되거나, 학교에서 들었을 때 이해가 안 갔거나, 문제집 풀면서 답지를 봤는데도 모르겠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물어봐. 니가 뭘 모르는지 아는 것부터가 공부의 시작이야.

-알았어. 국어 문법 너무 어려워. 하나도 모르겠어.

-모르는 건 두 가지 경우야. 개념 자체가 이해가 안 되거나 이해는 했는데 안 외웠거나. 전자라면 알 때까지 개념 설명을 다시 해줄 거고, 후자라면 도와줄 수 없어 니가 외워.

- 알겠다고오...

-'학'을 했으면 이어서 '습'을 해야지. 맨날 배우기만 하고 외우지 않으면 그건 안다고 착각하는 거지 실은 모르는 거야. 외워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문제에 정확히 적용할 줄 아는 것 까지가 진짜 '학습'이야. 너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학.학'만 하고 '습'을 안 하니 맨날 안다고 착각하고 그 모냥....

-아 진짜!! 가르쳐 줄 거야 말 거야! 잔소리 쫌!

-이 자슥이..엄마 말이 맞잖아. 그니까 밑도 끝도 없이 다 모르겠다고 하지 말고, 정확히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라고.


이윽고 문법책에 한동안 머리를 처박고 주리를 틀던 장중딩, 이내 뭔가 정리가 된 듯 고개를 들고,

-음, 이거 이거는 뭔 말인지 알겠고 외우면 될 것 같고..

하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동사랑 형용사가 그게 그거 같아. 구분이 안돼.


안 그래도, 단어의 형태가 변하지 않는 영어의 형용사와는 달리, 어미가 변하는 우리말의 형용사와 동사의 구분을 아이들이 어려워하겠다 싶어 미리 공부를 해두었다. 아는 거 물어봐서 다행이다 싶다. 영문법과 비교해 가며 열심히 설명하는 에미.


-자 봐봐, 영어 문법에서 형용사는 불변어지만, 국어 문법에선 가변어라는 게 제일 큰 차이점이야. 가변어가 뭔진 알지? 예쁘다, 예쁘고, 예쁘니, 예쁘지, 예쁘지만 등등 어미가 여러 가지로 변하는 거.

-응. 알어.

-동사는 ‘-어라/아라’, ‘-자’ 등 명령형, 청유형 어미와 결합할 수 있어. 보다, 보아라, 보자 처럼 말이야. 반면에 형용사는 예쁘자, 예뻐라, 배고프자, 섭섭하자 이런 건 말이 안 되지?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겠어?

-아.. 그러니까 동사는 엄마 같은 거구나.

-응? (이건 또 무신 '똥싸'는 소리?)

-명령형 '어미' 라며.

-.... 이 시끼가 진짜. 냉장고에 넣어 버릴까 보다. 꽁꽁 얼어 동사(凍死) 하고 싶냐?

- 흐흐흐... 엄마, 문제를 좀 더 풀어볼게.


잠시 후, 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어지는 장중딩의 질문

-엄마, 명령형만 되고 청유형은 안 되는 단어도 동사라고 할 수 있어?

-어? 형용사는 안되지만 동사는 둘 다 된다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 예를 들어 어떤 동사가 그런데?

-(문법책의 문제 하나를 가리키며) 여기 이 문제에서, '공부 좀 잘하자.' 이걸 청유형으로 쓸 수 있어?

-왜 안돼? '우리 공부 좀 잘하자.' 문제없잖아. 뭐가 이상해?

-'공부하다'와 '책 읽다'는 명령형 어미만 있는 거 아냐? 엄마한테 맨날 듣는 말인데.

'공부해라', '책 읽어라.'

-..... 너,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고 지금 엄마 디스하는 거지...

-아냐, 아냐 나는 정말 명령형만 있는 줄 알았다니까. 진짜야!! 큭큭큭....

-시끄러 이 시끼야. 일루와! 이거시 명령형 어미. 비 오는 날 먼지나게 맞아보자. 이거시 청유형 어미다!!!!


KakaoTalk_20250924_014240408.jpg 장중딩 덕분에 오랜만에 공부해 본 국어문법. 이런거 하나도 몰라도 나불나불 말만 잘하더라....




사랑하는 장중딩, 인생 첫 시험을 준비하는 너의 모습을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대견하기도 하면서도 덤벙거리는 네가 잘할 수 있을까,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 학원에서 시험 대비를 해주고 떠먹여 주는 공부 말고, 너 스스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확히 알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길 바란다. 그래야 오래도록 '진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엄마도 요즘 공부하고 연습하는 중이야. 너의 시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점수가 형편없더라도 화내거나 실망한 티를 내지 않는 연습. '쿨'한 엄마가 되어 의연하고 대범하게, 인생에 시험은 한번뿐이 아니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다음엔 잘하면 된다고 말하는 연습. 이렇게 정답을 알고 있는데도, 막상 그 상황에서 너에게 어쩌면 오답을 말할까 봐 솔직히 좀 긴장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인생에서 수많은 시험을 치르게 될 거야.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나 중요한 건 매번 최선을 다하는 모습. 나쁜 결과에 좌절하지 않고 그걸 오히려 다음의 좋은 결과를 위해 약점을 보완하는 기회로 삼는 전략, 결과가 좋을 때도 자만하지 말고 또 다음번 성장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란다.


너의 공부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도록 한 발 뒤에 서있되,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도와주고,

언제나 널 가장 믿고 진심으로 응원할 거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너와 나의 학창 생활,

우리 씩씩하게 잘해보자.(청유형 어미 ㅎㅎ)

잘 자라고 있어서 감사해. 사랑한다 엄마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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