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Books 편집자 레터
아직도 종이 신문을 본다.
모바일 폰으로, 노트북으로 클릭만 하면 10년 전의 기사까지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손가락 끝으로 직접 느껴지는, 지나치게 매끈하지도, 거슬릴 만큼 거칠지도 않은 신문지의 물성이 좋다.
윤전기에 오래도록 배어 있었을 희미한 잉크냄새가 훅 끼쳐와 벌름대는 콧구멍,
분명히 안경을 썼는데도 또렷하지 않은 글씨로 실감하는 늙어가는 눈,
핸드폰도 반으로 접어 한 손안에 쏙 들어오게 하는 기술을 구현하는 세상에서
거추장스러울 만큼 커다란 종이를 양 옆으로 쭉 펼칠 때의 번거로운 팔동작,
활짝 펼친 신문 위에 턱을 괴고 읽고 난 후 잉크로 새까매진 팔꿈치,
식탁 의자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한참을 읽은 후 쥐가 나서 저릿한 다리,
기사 속 글쓰기 아이디어나,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찾아 밑줄을 그을 때,
색연필을 쥔 손가락을 타고 내 몸속으로 단어가, 문장이, 글이 들어오는 느낌....
나에게 '신문을 읽는다'는 건, 온몸을 쓰는 일이다.
몸뿐 아니라 머리와 감정을 쓰기도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경제, 과학 기사를 읽을 때,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정치면을 읽을 때,
영화, 소설, 드라마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사회면을 읽을 때,
논리와 감성을 겸비한 필력이 부러운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을 때,
골이 지끈거리거나, 감정이 요동을 치기도 하니,
나에게 신문 읽기는 몸과, 마음과, 감정과 정신을 소모하는 격렬한 노동 같은 것.
꽤 오랜 기간, 신문을 펼치지 못했다.
매순간 마음을 추슬러야 했기에, 간신히 가라앉힌 마음 속 흙탕물이 신문 기사 한 줄로도 순식간에 부유했다. 매일 돌아가는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 속에는 잊고 싶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단어, 문장, 기사, 글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했다. 어떤 날은 맨 앞장 헤드라인 한 줄에도 하루가 무너져 내렸다. 세상과 단절되고 싶어 전화 연락처도 다 지우고, 카톡 단톡방도, 인터넷 카페도 다 탈퇴했는데 아침마다 현관 앞에 놓여있는 신문은 알고 싶지 않은 세상 소식을 자꾸만 내 앞에 펼쳐놓았다. 펼치지도 않고 쌓여가는 신문을 고스란히 폐지함에 넣으며 몇 번이나 구독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아이에게 매일 읽히는 어린이 신문이 계속 봐야 할 핑계가 되어주었다. 실은 다시 신문을 펼치게 될 날을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인 것도 같다.
시간이 좀 지나고, 눈을 감은 채 신문을 집어 들어 정치, 경제, 사회 면을 통째로 건너뛰고, 문화, 스포츠, 칼럼, 사설 부분만 찢어서 읽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서는 조심스럽게 앞쪽 한두 페이지를 넘겨 반쯤 접은 채 헤드라인만 대강 읽고 바로 컬처 문화 면으로 넘어갔다.
실은, 아직도 그 일 이전처럼 신문 전체를 다 읽지는 못한다.
얼마전이다. 이제 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추슬렀다고, 마음이 좀 단단해졌다고 생각한 날, 예전처럼 호기롭게 앞면부터 읽다가 기사 한 줄에 다시 와르르하고 멘탈이 무너졌다. 엉망으로 망가진 며칠을 보내고, 겁이 나서 다시 앞부분을 찢어버리고 있다. 그럴 거면 아예 보지 말지 싶기도 하지만, 구석구석 보석 같은 문장과, 글이 숨어있는 곳이 또 신문임을 알기에 구독을 포기할 수도, 포기하고 싶지도 않은 것도 참... 지독한 아이러니다.
오늘자 신문을 읽다가 책소개 글에 한참을 머물렀다. 읽고 또 읽고 줄을 그으며 마음과 감정을 온통 썼지만, 힘들지 않고 충만해진 기분. Books 섹션 곽아람 팀장님이 쓴 책 소개글을 읽으며, 어쩌면 조만간 다시 신문 맨 앞장부터 맨 뒷장까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보석 같은 단어와, 문장과 사유를 주워 올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눈으로 읽은 글을, 마음으로, 몸으로, 손으로 한 자 한 자 새기며...
여기, 브런치 일기장에 써 본다.
과거를 다시 쓰기
"과거를 바꾸고 싶으면, 아마도 과거를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내털리 호지스 에세이 '엇박자의 마디'(문학동네)를 집어 든 것은 서문 맨 마지막의 이 문장 때문입니다. 저자는 2022년 출간한 이 첫 책으로 전미도서상 후보 및 윌리엄 사로얀 국제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재미 교포 2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하버드대에서 음악과 영문학을 전공했죠. 책엔 저자가 무대 공포증으로 음악을 그만두게 되면서 자신의 음악적 여정,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인종차별 경험, 부모의 이혼 등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솔리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20년 가까이 바이올린을 연주한 저자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회의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글쓰기로 과거를 되짚음으로써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며 치유받게 됩니다. 이는 음악과도 닮아 있죠. 진짜 모든 게 끝났다면, 더 이상의 연주는 없고 정말 남은 것은 침묵뿐이라면, 왜 과거는 자꾸만 주제 선율로, 가슴 아픈 반주로 되돌아와 기억과 재해석의 여지를 주는 걸까?
삶이 계속 엇박자가 나는 것 같지만 엇박자도 나름의 선율로 인정하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서늘하고 고요한 가을 정취와도 잘 어울립니다.
"나는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에 관한 글을 썼고, 그럼으로써 필연적으로 과거를 다시 쓰게 되었다. 일어난 사실을 바꿨다기보다 그것들이 모여서 서사와 의미를 창조하는 방식을 바꿨다. 이제 나는 음악가가 될 기회를 상실했다거나 스스로 포기했다고 느끼기보다 음악가로 사는 삶이 그 당시 나에게 꼭 필요하고 놀라운 일이었음을 , 그러나 결국에는 그 시간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음을 이해한다."
글쓴이 조선일보 곽아람 Books 팀장
일어난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글로 써내는 과정이
내 삶의 서사와 의미를 창조하는 방식을 바꾸고,
그렇게, 그 일이 아니었으면 결코 생각지도 못했을 그것이
결국, 나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것.
더 나은 방향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그 일이 아니었으면,
결코 접어들지 않았을 새로운 길에서
진짜 나의 삶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것.
신문에 밑줄을 그으며 펜을 쥔 내 손가락을 통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들어와 앉았다.
내일 아침엔 맨 앞장부터 찬찬히 신문을 읽으련다.
<기사전문 링크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