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도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가 저녁에 지쳐 쓰러져 자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퇴사 후 여유롭고 균형 잡힌 삶을 살겠다는 다짐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제 퇴사 3개월 차, 나의 시계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며 움직였던 직장인의 시계에서 장소만 옮겨져 있었다. 아마 가정으로 재취업된 모양이다. 맡은 일에 최선만 다하다가 수명을 다하는 시계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선택한 시간임을 잊어버리고, 더 단련시키기 위한 다른 행로를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와 가정의 양립에 적응된 시간만큼 나와 가정의 양립으로 변화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에 있던 시간만큼의 여유가 생겼으니, 가정에서 더 효율적으로 보내겠다는 부푼 마음이 탈이었다.
아이들 등교 후, 1시간 안에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아침 식사를 챙겨 식탁에 앉는다. 음악을 들으며 건강식으로 준비된 식사를 여유 있게 즐긴다. 그리고 읽을 책과 필사노트에 하나하나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조용한 공간에 나만의 시간들을 채웠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커피 한잔과 함께 업무 스케줄을 적듯이, 오늘 할 일을 빠짐없이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시간대별로 쭉쭉 적어나간 To do list.
회사에서처럼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했지만, 가정에서의 시간은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했다. 청소, 빨래, 운동, 아이들 돌봄 및 스케줄, 나를 위한 글쓰기, 독서까지 빼곡히 적은 일정을 보며 흐뭇했다. 그렇게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스케줄대로 수행해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회사의 업무는 대개 계획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정에서는 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계획대로 실행하기란 언제나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 속에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아이들과의 예측 불가한 시간은 가정에서의 계획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아침부터 예민해져 내 혼을 빼놓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동안은 울면 대충 달래다가 뛰어나가면 그만이었다. "학교가 무슨 벼슬이냐" 말이 목구멍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지 예측 불가한 예민 덩어리들이라 비위 맞춰주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등교시키고 겨우 한숨 돌리기도 전에 금세 돌아와 요구사항도 점점 많아진다. 대체 지금껏 엄마 없이 어찌 지낸 건가 싶을 정도로 그냥 혼자 하는 법이 없다. 알아서 척척 해냈던 그 아이들이 어디로 사라졌나 싶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아이들이 나를 수시로 찾는다.
간혹 날씨가 변덕을 부리거나, 아이들이 아프면 모든 계획들이 흔들린다. 당연히 내가 챙겨야 하는 부분들이지만, 그로 인해 갑자기 밀려지는 일들이 생긴다.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일들이 생겼지만, 가정에서는 그 포기가 되지 않는다.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려니 하루만 보 걷기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부족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면 하루가 어찌 지나갔는지 가물해진다.
또한, 아침에 기분 좋게 청소를 끝내고 말끔해진 집을 보면 뿌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어질러지는 건 다반사였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라고 애써 위로해 보지만, 청소에 들인 내 시간이 무척이나 허무하게 느껴진다. 케이지안의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에 지쳐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퇴사 후에도 두 번이나 누수 공사를 했기에, 집안 전체를 다시 재구성하고 정리하는 일이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겨진 상황에 매우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퇴사했으니, 식이와 운동이 필수조건이다. 그동안 제일 챙기지 못했던 부분이라 가장 오래 걸릴 것이다. 몸에 신경 쓴다고 건강식을 챙겨 먹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가족들이 없을 땐, 부엌조차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한 한 끼의 식사를 챙기는 것이 너무 귀찮다. 가장 기본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지만, 매 끼니 내가 챙겨 먹고 치우는 상황이 너무 싫다. 남이 해준 밥이 좋다며 회사 구내식당의 식단을 늘 불평 없이 먹던 나였다. 남이 해준 밥이 제일 그리워진다. 또, 틈나는 대로 걷기 위해 나간다. 따로 운동시간을 낼만큼의 틈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에 한 시간씩 걸을 일정을 일부러 만든다. 조금 거리 있는 곳의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외출 시 되도록 걸어 다니면서 운동을 보충하느라 일정이 더 바쁘다.
출퇴근 시간에 즐기던 두 시간의 독서가 사라지자,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워졌다. 한 주에 한 권 이상씩 읽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자유 속에 독서하다 보면 자꾸 딴 곳에 정신이 팔린다. 특히, 수시로 울려대는 휴대폰과의 싸움이 어렵다. 한순간 잡으면 시간 잡아먹는 기계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놓으면 휴대폰으로 하는 업무들이 많다. 컴퓨터를 종일 끼고 살았던 직장인에겐 인터넷과 프로그램으로 모든 걸 관리했다. 내 책상이 사라진 상태에선 휴대폰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멀리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휴대폰으로 하고 있으니 가까이 둘 수밖에 없다. 책을 들고, 필사를 시작하기만 하면 못다 한 집안일들이 꼭 눈에 거슬린다. 하나만 하려고 읽어서면, 하나를 건들면 옆으로 확산되기 쉬운 게 정리다 보니 나의 독서시간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저녁때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접지만, 오히려 하루종일 고된 일정에 쓰러져 자기 바쁘다.
사실 퇴사 전, 갑작스레 생긴 자유로움이 괜한 우울함으로 변하지 않도록 교육 계획들을 세워두었다. 이토록 철저한 계획형인가 싶게,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서 신청했다. 타이밍이 잘 맞아 한 달에 한 번 할 수 있는 교육을 신청해 한 주에 하루씩 외출하는 스케줄을 만들었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시간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예상보다 한꺼번에 겹치면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직장 생활보다 더 바쁜 전업 생활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자유가 생긴 만큼 챙겨야 할 것도 다양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깨달은 것은 진정 나만의 자유 시간을 얻기 위해서 더욱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었다. 자유로움이 그동안 못다 한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자유 속에 동반된 업무들이 생긴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자유를 느끼면서 살아가려니 적응하는 데에 체력도 한몫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쭉 해왔던 나의 루틴들은 어김없이 깨기지 시작했다. 새로운 것들이 채워지긴 했지만, 행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도 날마다 늘어났다. 이토록 시간 관리를 못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우 바쁜 시간들을 보내왔던 회사에서의 모습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니, 다시 업무 과중으로 지쳐버리는 일들이 나타났다.
이제는 시간을 새롭게 재설계해야 할 때다.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요리할지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질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벗어난 지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천 개의 파랑>에서 나온 구절이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요.
40대에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는 현실을 이제 하루하루 받아들이며 체득하는 시간을 걷고 있는 중이다. 한순간에 바뀌는 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술하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퇴사를 한심하게 생각한 그들에게 뭔 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빨리 달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와는 분명 다른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들이, 하루도 여유를 즐기지 못하게 했다. 남들보다 늦게 회사가 아닌 밖에서의 자유 시간을 얻은 만큼 몇 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쉬고자 했던 선택을 잊고 선, 지난 몇 개월을 또 달리고 또 달렸다. 앞만 보고 그저 빠르게 달리기만 해야 하는 경주마처럼, 퇴사 이후의 내 시간도 달리고 있었다.
'천천히, 느리게 뛰는 법을 배워. 너만의 시간을, 너만의 행복을 찾도록'
이젠 안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다. 그리고 빠르게 아닌 천천히, 느리게 달리는 법에 익숙해지도록 이제야 노력 중이다. 빠르지만 쉽게 지쳐버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더 오랜 시간 지속해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장거리 달리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천천히, 느리게 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조용히 여유를 즐기며 나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마치 요리사가 재료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맛난 요리를 완성하듯이, 나의 시간을 요리하며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시간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빠르게 달리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내 시간을 요리하며, 나만의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비록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길을 걷느라 더디게 걷고 있을지라도, 그 시간이 쌓여 나의 내일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