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by 킬라

저번 글에 <열두 살의 여름>(쿠어 관링, 2019)을 본 소감을 남기면서 아스거 욘 전시 <대안적 언어 Alternative Languages>에 대한 감상을 짧게 썼다. 이번 주 수업에서 그 감상을 되새길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관련한 이야기를 조금 더 쓰고 싶다. 그때 내가 전시를 보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였다.


1. 이미지가 언어라면 영화 또한 이미 언어다.

2. ‘수정’ 작업을 통한 아스거 욘의 말(“회화여, 영원하여라.”)은 시네마에서 뉴 미디어로의 과도기를 겪는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1을 통해 떠올린 질문은 ‘영화는 이미지일까, 텍스트일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충 ‘둘 다’라는 답을 내리고 생각을 중단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주 세미나가 끝나고 동기와 함께 집에 가면서 대사가 없는 영화 혹은 음악이 대사를 대신하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나누었으나 그때까지도 이 글 제목의 마지막 부분, ‘사운드’는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전시 관람 한 달이 지나서야 이를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떠올리기보다는 알게 된 것이지만) 목요일 수업 중에 선생님이 영화의 3요소로 (무빙)이미지, 텍스트, 사운드를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3요소를 언급한 것 또한 “영화는 언어”라는 맥락에서였기 때문에 나는 아스거 욘의 전시를 또 다시 떠올렸다. 그때의 감상이 직전 주 여성영화제에서의 경험과 얽히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종종 영화를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이 신기하고 그런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가 신기한데, 그래서 영화의 힘은 그런 곳에, 유치하게 말하자면 영화의 신비에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잘 싫증내는 내가 영화와 글쓰기에만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은 나에게 그 두 가지만이 계속해서 새롭고 신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공부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공부한 다음 내가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힘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끼면 좋겠다. 그런 힘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영화들이 관객 앞에 상영될 기회를 더 많이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힘에 대하여 조금 더 정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좋겠고, 지금 공부하는 것이 그 소망에 도움이 되면 좋겠고, 그렇게 해서 글쓰기라는 방식으로 그 모든 과정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