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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philosophy Jan 20. 2021

인생의 경계를 넘어서면 보이는 것들

내 인생을 바꾼 단 한 가지 경험


한 번 경계를 넘어서면 이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경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인생에서 경계를 넘어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넘어서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이전의 경험과는 송두리째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걸까. 지난 내 삶을 돌이켜보면 경계를 넘어선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 경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를 계기로 나의 사고와 행동, 생활의 패턴, 삶의 목표와 지향점이 전부 바뀌었기 때문이다.



2년 만에 만난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았다


오래된 지인과 2년 만에 약속을 잡았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현재의 회사에 안착했다. 반면 나는 5년 넘게 회사를 관두지 못하다, 드디어 1년 반 전 퇴사를 했다. 그리고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2년 전 우리가 을지로에서 만났던 당시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한다. 다이어리를 보니 18년 10월 경이었다. 나는 당시 다니던 회사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했다. 반면 본인이 원하는 길을 찾아 새로운 직무로 새 회사에 안착한 그는 평온해 보였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시절 내가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는 보지 않아도 스토리가 그려지는 한국 주말 드라마처럼 뻔했다. 회사와 상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고민, 진로의 불투명함에 대해 답이 없는 이야기.


대화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만남이 어떻게 끝났는지 그 때의 감정이 생각난다. 답답했고 불편했으며 점점 기분이 상했다. 내 이야기에 대한 그의 반응이 못마땅해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여러 회사를 거쳐 방향을 틀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그와, 당시의 나는 '경험의 체급'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스타트업으로 옮겼고 짧은 시간이 무색할 만큼 압축적으로 좋은 경험을 쌓았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의 첫마디는 "야 하나도 안 변했다"라는 거였다. 외관상 우리는 똑같았다. 하지만 과거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2년 후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눈빛과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친구, 그동안 많이 변했구나'


그는 나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그런 경험을 한 네가,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고 했다.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디디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서비스를 운영했던 경험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더면 꿈꿀 수 없던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일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확장시켜 주었고 일을 대하는 태도,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심어 주었다.



경계를 넘어서 보니, 이전의 세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지독한지 알았다.


대기업을 퇴사하는데 무려 5년 4개월이 걸렸다. 일 년이 지나지 않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3년 차가 되면서부터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는 무력함보다는, 퇴사 후 인생에 닥칠 절망감과 두려움이 더 컸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결심하지 못했다.


19년 2월, 어느 날과 다름없이 야근하고 집에 가는 올림픽대로 위 시속 110km의 택시 안에서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2주 뒤 퇴사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계를 넘어선 순간이었다.


퇴사  2-3달간 여행도 가고 배우고 싶었던 공부도 했다. 스타트업에 입사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전의 세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지독함  자체였는지. 일의 성과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신 모욕적 발언, 아무런 보상 없는  70시간 이상의 근무, 강압적인 회식과  문화, 5 차가 돼도 주도적으로   있는 일이 없는 현실 . 인간성이 말살되는 느낌이었다. 당시 나의 상태는 그야말로 '좀비'였다. 스스로 사고를   없고 몸만 겨우 움직일  있는 상태.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돌이나 분필로 선을 그어 놀곤 했다. 각자의 영토가 있었고 자신의 선을 넘어 상대의 영토에 침범하려면 위험이 따랐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그 이상의 보상이 따랐다. 분명 위험이 있었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도 선을 넘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선을 넘는 것이 게임의 방식이었다. 자신의 영토 안에만 머무르려는 아이는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경계를 넘어서는 일에는 두려움부터 든다.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넘어보면 알게 된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기업을 퇴사하고도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스타트업에 입사했고 더 크게 성장했다. 오히려 별일 아니었네라는 생각까지 든다.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직까지는. 지금의 세계가 좋고 이전의 세계는 악(惡)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내 의지만 있으면 말이다. 한 번 경계를 넘어봤기 때문에. 경계를 넘어본 사람은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경계를 넘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몸에 힘을 주고 빼고,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근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경계를 넘어선 경험은 또 다른 경계를 넘어서게 해 준다


경계를 넘어서고 나니 확실히 유연해졌다. 일례로 몇 달 전, 정말 사랑해 마지않았던 나의 첫 스타트업을 퇴사했다. 이전 같았으면 두려워서 몇 년간 유보했을 정도의 큰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고민을 많이 안 한 것이 아니다. 고민도 많이 했고 갈등도 있었지만 과거와 단 하나 달라진 게 있다. 어떤 결정을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타인의 생각과 선택을 내 멋대로 나의 기준에서 판단하고는 했다. 이제는 모두를 응원한다. 섣불리 추론하지 않는다. 마음으로는 그들이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또 다른 마음으로 응원한다.


경계를 넘어서는 행동은 계획하거나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근육과도 같다. 한순간 힘을 줘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붙는다. 정말 못 견디게 괴로울 땐 순간적으로 힘이 생기기도 한다.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은 뒤늦게 알 수 있다. 경계를 넘어서기 전의 과거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듯 아득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때 참 좋았네.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아'


이제 나는 믿는다. 또 다른 멋진 기회가 찾아오면 다시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잡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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