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탐색의 시대, 전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끔 지인들이 물어봅니다. "그림 그리는 거 재밌어?" 전공도 아니지만 몇 년에 거쳐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면 유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주업은 아니어서 자랑할 수준은 못되지만, 꾸준히 한 덕분에 '실력 진짜 좋아졌다', '팔아도 되겠다'와 같은 분에 넘치는 칭찬을 종종 듣기도 합니다.
그들 눈에도 보이겠죠. 처음에 엉성했던 그림이 점점 보기 좋게 변해가고 있으니까요. 보는 사람에게도 느껴질 것입니다. '저 사람 진심이구나' 하는 것을요.
무언가를 지고지순하리만큼 좋아하거나, 나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질 만큼 몰입하는 사람들은 저에게도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들의 꾸준함에 존경을 넘어 신성함을 느낍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책의 저자 Peter Davis의 2018년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입니다. 연설은 "혹시 매일 밤 Netflix에서 드라마를 찾아 헤매다 결국 잠들지 않나요? 이것이 우리 세대의 특징입니다."로 시작합니다. 뜨끔해져서 그다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연설에 살을 보태 완성된 이 책, 전념(Dedicated)은 매일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격변의 시대,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하는 가치가 퇴색된 시대에서 '전념하기'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전념’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들이고 꾸준히 성실히 지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념의 대상은 책의 사례처럼 노예해방, 민주주의, 평등 등과 같은 이념적 신념일 수도 있고 환경, 젠더, 지역사회를 향한 지향점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 동료, 우정에 대한 전념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과의 오래된 관계 역시 전념의 산물이죠. 또는 오랜 시간 좋아서 하다 보니 습관이나 취미가 된 것일 수도 있어요.
책에 따르면 우리는 세 가지 두려움 때문에 전념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 후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어느 하나에 전념했다가 훗날 '다른 것을 할걸'하고 후회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무언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거기에 헌신하면 그로 인해 내 정체성, 평판, 통제감에 혼란이 생길까 두려워합니다.
셋째, 고립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무언가에 헌신하면 그로 인한 책임감 때문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며,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몰입과 전념이 '자신에 대한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윤리'란 좋음, 옳음과 같은 이상적 가치나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당위입니다. 누가 시켜서 또는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죠. 내가 마음먹은 바를 해내기 위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하루치의 분량만큼을 끝내며, 동시에 나를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주어진 삶과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윤리를 성실히 지킨다는 것은 당장 눈앞의 결과로 나타나진 않지만,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확신을 주고 성공과 행복의 시작이 됩니다.
무언가에 몰입했던 시기를 떠올려보세요. 지금 저를 만든 것도 한순간 스쳐갔던 일시적인 경험들이 아니라, 밀도 있게 쌓아 올린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 무엇에 더 전념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념을 통해 삶의 깊이를 통제한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p.41)
전념은 한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매일의 실천에서 나온다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매일, 매년 꾸준하게 시간과 노력을 쌓아 스스로 극적인 사건 그 자체가 된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용은 일상이 주는 지루함, 다른 방도 기웃거리고 싶은 유혹,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결단의 순간은 칼을 꺼내서 용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정원을 가꾸는 일에 가깝다. (p.25)
전념은 행복과 성공의 열쇠다
영원히 탐색만 하다가는 깊은 절망에 빠지기 쉽지만, 무언가에 전념하면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전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p.35, 39)
책임의 역설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 원한다. 책임감이 우리를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깊은 내면은 투쟁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갈망한다. (p.63, 64)
깊이는 새로움을 이긴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생각이나 관습일수록 미래에도 계속 유지될 확률이 높다. 지속성은 깊이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몇 년 후에 무언가가 우리에게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때, 몇 년 후에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p.66, 67)
깊이가 없을수록 빠름을 쫓게 된다
"얕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는 속도가 빠를수록 안전하다." 피상적인 일상의 표면 아래에 깊이가 없으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좇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 자신의 피상적인 삶에서 주의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를 늦추면 삶의 얄팍함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p.69)
역사는 전념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
역사는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들의 헌신으로 가득하다. (p.97)
대단한 각오나 다짐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전념하기를 결심했다고 해서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p.147)
"매일 아침 이 일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하며 일어나진 않아요. 그냥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이게 내가 원하는 길인지 의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p.148)
"처음부터 10년짜리 여정을 떠올리지는 않았어요. 그냥 한 번에 한 걸음씩 밟아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p.153)
목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그것만 생각했다. (p.154)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보다 중요하다
선택지 고르기의 과제는 '올바른'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연적으로 선택한 미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자신의 선택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달려있다. (p.155,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