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상서

시어머니께 온 문자 한통, 못돼먹은 며느리가 쓰는 편지

by 유영

'하고싶은데 하지 못한 말'에 실린 글은 편협하고, 일방적이고 , 편향적이고, 비논리적이고,비도덕적이고, 때론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자기검열을 하고 대화 하고 있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느라 극단적인 의견대립을 피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내 생각을 최대한 자유롭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님께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유교 사상에 어긋나고, 며느리의 도리가 아닌 것을 압니다.

그치만, 해야 할 말은 해야 저도 병이 안 나요. 부족하고 못난 며느리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며칠 전 어머니께서 보낸 문자를 보고 저는 정말 충격받았어요.


얘야, 네 남편 좀 챙겨라. 얼굴이 너무 까칠하더라. 피부도 푸석푸석하고 머리도 너무 길고, 눈그늘도다크서클도 너무 심하더라. 그런 건 다 아내 몫이야.


어머니, 저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겨울이라 남편 피부가 건조해 보이길래 팩하라고 했는데, 귀찮다고 그냥 자더라고요. 그리고 머리 스타일은요. 어머니가 보시기엔 머리가 좀 길어 보일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멋있어요. 요즘 젊은 남자들에게 유행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눈그늘은다크서클은 제가 더 심해요. 어머니. 제 얼굴도 자세히 봐주세요. 그리고 아마 어머니 뵈기 전날 게임을 하느라 늦게 잤는데, 어머님 댁에가느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럴 거예요. 오빠가 아침잠이 많잖아요.


그런데요. 어머니.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챙기는 몫이 왜 아내의 몫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나이 서른 살 먹은 성인남성을 왜 겨우 한 살 어린 성인여성이 챙겨야 하는 건가요?
저희는 둘 다 성인이에요. 결혼을 통해 부모님들과도 독립 한 새로운 가정이 생긴 성인이죠.
성인은 보호자의 돌봄이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잖아요.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길 수 있는 존재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지면 건강식품도 챙겨 먹고, 술 많이 마신 다음 날은 집에서 쉴 줄 알고,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주말에 가끔은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면서 컨디션을 조절할 줄 아는 성인이요.


저는 어머니가 저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동안 저는 소위 '시집살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겪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나 아는 언니들을 통해 들었던 그런 힘든 시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그 문자를 받고 제가 생각하는 아내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과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역할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아들 둔 어머니들이 하는 말 중에 '장가가면 정신 차릴 거 같아서 장가보내놨더니' 라는 말을 하시잖아요?

저는 이 말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자기 아들이 온전한 성인의 인격체를 갖추지 못했다면 부모로서 양육자로서 그 책임을 일부 가지고 있을 텐데, 왜 그 책임을 아들의 아내, 당신들의 며느리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건지…….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도 혹시 이런 걸 저에게 바라시는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결혼은 선택에 의한 것이잖아요. 제가 결혼은 선택한 이유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덮어주고 희생하고 감당할 이유는 없어요. 각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과 성인이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을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던 규칙을 사랑이라는 가치를 전제로 하면서 서로 배려해가면서 조율하는 과정을 갖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남편과 저는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각자 다른 곳, 다른 환경 속에서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의 삶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만큼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요? 서로의 방식 중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고, 절대 합쳐지지 않는 것은 그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남편의 외모를 챙겨주는 것이 결코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결혼 전, 어머님 댁에서 남편이 출근할 때 어머니는 매일 남편이 입을 옷과 헤어스타일, 로션까지 챙겨주셨나요? 이렇게 치사하게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요. 그냥 제가 혼날 일이 있다면 혼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오로지 저로 인한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실수를 했거나, 어머님이 서운하게 생각하신 일이 있거나 그럴 때요. 남남으로 살 거니 관심 갖지 말아 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저도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의 아들, 딸들과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저 빼고 다 똑같이 생긴 그런 가족이지만요. 생긴 건 다르지만, 어머니와 제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잖아요. 그 사람의 추억과 스토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사랑하는 방식에 조금의 차이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되바라졌다고 저를 혼내실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감당할게요.

제가 가끔 이런 말을 해야, 어머님이 저에 대해 오해하시지 않을 거 같아요. 꾸지람을 듣고만 있겠다고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지만, 말대답을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요. 제 생각에 어머님은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어요.그렇지만 저에 대해서는 알게 되겠죠. 제가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남편과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저는 그런 이유에서 언제나 말대답을 할거에요. 진짜 제 모습을 알아봐 달라고요.

버르장머리 없지만 이게 제 모습입니다.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한없이 부족한 며느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