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리더의 유난한 성장기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쩌면 올해가 되기 이전부터. 꽤 오래.
다시 또,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른다.
사실, 이미 수많은 이유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며 외면해 왔다.
맞다, 다시 번아웃이 찾아온 것이다.
삶에서 가장 바닥을 치는 날은 오히려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주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 찾아온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니까. 나 아직 박수받을 때 아닌데, 나 아직 별거 없는데, 나 아직 갈길이 먼데, 나 생각보다 별로인 인간인데..
박수받는 앞에서의 모습과 늘 24시간 그런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내가 나를 옭아매며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다가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때가 와버린 거다.
한국에서 사단법인을 만들고, 모로코 현지에서 협회를 만들기까지 정말 많은 우여곡절과 이슈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행정사 사기(업무 태만을 넘어선 사기 수준이었다 생각)와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과지출된 예산.
모로코 현지에서는 자격 갖추기부터 시작해 넘어야 했던 수많은 관문들. 만나주지도 않는데 담당 경찰서를 찾아가 웃고 울며 애원했던 날들.
만들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수백 킬로씩 달렸던 근 6개월의 시간들.
수많은 응원과 박수, 염려 속에 모든 우여곡절을 겪어내고 달성한 성취였다.
그리고 행정사 사기 이슈로 인한 뒷수습을 하느라, 본격적인 틀을 갖췄으니 더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고 또다시 10개월을 달렸다.
10개월 동안, 목표했던 프로젝트들도 모두 해냈다.
중간중간 하루 건너 하루 발생하는 이슈들은 개발도상국 사업 현장에서 쉬이 발생하곤 하는 일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음에도, 잘 돌아가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패했다.
이 말을 내뱉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이렇게라도 쓰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제대로 된 성취를 일궈내는데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조급함만 가득해서 자꾸 일을 그르쳤다.
말로는 교육은 백년지대계야를 외치면서도, 당장 조급하니 손대는 모든 것이 얼기설기 매듭을 짓고, 또 쉬이 엉클어져 버렸다.
환율은 환율대로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슈를 해결하고, 내 속도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현지 스탭을 보고 있으면
자꾸 그들의 속도가 아닌 내 속도를 주장하고 싶어지고. 그러다 보면 속은 답답하고 머리는 터질 것만 같고.
그래서 현장의 속도에 맞춰 하나씩 만들어질 수 있도록, 탄탄한 직조를 할 수 있도록,
잠시 현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당분간은 제발 쉬면서 몸과 마음을 재정렬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지만, 처리해야 할 한국에서의 행정일은 다시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또 쉼 없이 매일을 보냈더니 이제는 정말이지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른다.
리더는 누구보다 깨끗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조직의 사업에 대해, 비전에 대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내 안의 말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할 것들을 담고 쏟아내고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다.
유스피아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설명하려면 1부터 10까지를 다 설명해야 한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해 왔다.
문제는 정리되지 않아서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1부터 10까지 궁금해할 거라고, 듣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 거였다.
분명 사람들이 나의 경험과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감동을 받고 함께하고 싶다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난 그것만 믿고 계속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더 이상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닌 법인의 사업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고 있는 일인데.
계속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내게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 같은 것들이 내게는 변화의 시작점이자 끝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을 찾아 성과관리 공부를 시작했다.
현업자들도 어려워하는 걸 또 조급하게 바로 해보겠다고 하다가 제풀에 지쳐,
그냥 좀 더 쉬운 방법 없을까를 기웃기웃하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품었던 쉽게 가고 싶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훅 올라왔던 시간들.
그 끝에 마주하는 건 너무도 부끄러운 내 모습이었다.
그동안 내가 뱉어왔던 품어왔던 모든 이상적인 모습들, 가치들을 내 스스로 거슬렀던 순간들.
그래서 자꾸만 눈물이 났나 보다.
힘들다고 해서, 조급하다고 해서 풀리는 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
욕심만 많아서, 마음만 급해서 자꾸 배배 꼬여갔나 보다.
아니 그랬다.
배배 꼬여서 다시 마음을 끌어올리겠다고 감사일기를 쓰면서도 진짜 감사가 솟아 나오지 않았고,
늘 감사합니다. 진짜 덕분이에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감사한 모습들에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당연함과 서운함을 느끼고 툴툴거리고 찡찡거리고 있었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데, 내가 자꾸만 싫은 모습으로 못난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알면서도 몰라 몰라 지금 내 마음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어라는 생각으로 외면해 오다,
이틀 전 오랜만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엄청난 흑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더더욱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 이런 내 모습이 너무너무 싫어서
오랜만에 달렸다.
첫 1킬로를 뛰는데 그냥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러면서 외면했던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꽤 오랜 시간 감사함을 감사함으로 못 느끼고 있었구나.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구나.
원하는 것들을 이뤄내려면 유난하고도 끈기 있게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만 쉬이 가려고 했구나.
그 마음이 나도 모르게 커지니 결국 의도치 않은 순간들에 다 삐져나오는구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너무너무 부끄럽고 후회된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생채기 낸 말도 행동도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고 후회만 하며 눈물 흘릴 수는 없다.
그럼 더 못나고 못난 모습만 반복할 테니.
부끄러움을 직면하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말로만 위임위임하지 말고, 제대로 위임하기.
몰라 몰라라는 말로 외면하지 말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갖기.
감사한 마음, 덕분이라는 마음 갖기.
세상에 지름길은 없다는 이치를 깨닫고, 정공법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기.
어디에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부끄러운 내 모습, 부끄러운 부족함을 직면하고
다시 나아가보자.
초보 리더의 요란하고 유난한 성장기는
분명 진짜 성장을 이뤄낸 후 웃으며 다시 볼 글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