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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by 이성윤

여기 두 K가 있다. 하나는 세계 문화 최정상에 선 K컬처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비아시아권에서 한국에 대해 정확히 아는 외국인은 많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서 "한국에서 왔다"라고 말하면 열에 일곱, 여덟은 "North? or South?"라며 재차 물어볼 정도였다. 그 정도로 비아시아권에서 한국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랬던 한국의 위상이 20여 년 만에 180도 뒤바뀌었다. BTS를 시작으로 수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빌보드 차트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오징어게임>은 에미상 6관왕을,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다. 또 손흥민 선수는 EPL 득점왕에 올랐고, 전 세계 MZ세대는 페이커 선수의 플레이에 열광하고 있다. K팝을 비롯한 K드라마, K영화, K스포츠 등 K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는 오늘날의 모습을 한 외신은 'K-pop Invasion(K팝의 침공)'이라고 평가했다. K콘텐츠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가 됐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K컬처와 달리 K정치는 아비규환이다. 냉정 시대를 끝으로 지구상에서 체제 논쟁이 자취를 감췄건만 한국 정치판에선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체제 논쟁이 극에 달하면서 급기야 52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라며 비상계엄 선포 취지를 밝혔다.


1972년 10월 이후로 52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에 전 세계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21세기에, 세계 10위권의 문명국에서 계엄이 선포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의 대내외 이미지는 즉각 실추됐다. 환율이 급등하고, 경제가 흔들리고, 여행 위험국으로 지정됐다.


K팝도 비상계엄 선포 여파에 휩싸였다. K팝 스타들의 콘서트가 취소되는 해프닝이 일어났고, 탄핵 촉구 집회에 후원했거나 동참한 K팝 스타들은 강성 보수 지지층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보수 지지층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K팝 스타들이 광고 모델인 기업들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며 주장했다.


K팝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 중심에 섰다. MZ세대는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던 시위 현장은 K팝 메들리로 대체됐다. 탄핵 집회에서는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 '위플래쉬', 지드래곤 '삐딱하게' 등이 울려 퍼졌다. K팝이 무소불위의 정치에 저항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K팝이 탄핵 정국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집회에 참여한 MZ세대가 K팝의 주요 소비층이기 때문이었던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탄핵 찬성 대 반대 구도로 이어졌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다양성'을 가치로 내건 K팝과 '폐쇄성'이 짙은 K정치 간의 대립 구도였다.


1990년 후반에 등장한 1세대 K팝 아이돌은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4세대 아이돌까지 변모해 왔다. 4세대 아이돌까지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했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핫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K팝 변모의 핵심에는 '다양성'에 있었다.


반면 K정치는 군사 정권 이후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잡았으나 정치하는 주체들은 변하지 않았다. 386세대(30대의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는 1980년대 군사 정권에 대항하며 한국 정치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 세대가 퇴장하고 민주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386세대는 혜성처럼 등장해 민주화라는 한국 정치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이들의 권력 욕심은 끝을 모르고 40년 넘게 한국 정치의 주류로서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정치 비전을 잃어버린 K정치는 자유 대 민주라는 낡아 빠진 이념 논쟁만을 이어갔고, 이념 논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세계 10위권의 문명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미래 비전을 잃은 폐쇄적인 K정치의 말로였다.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정치적 혼란에 MZ세대는 K팝을 틀었다. 폐쇄적인 정치를 향해 다양성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비상계엄 사태로 번진 K팝 VS K정치, 다양성 VS 폐쇄성은 어떤 양상을 만들어 내게 될까? 이 물음을 안고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를 쓰게 됐다. 글이 끝날 때쯤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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