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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는 왜 집회 현장에서 K팝을 틀었을까?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2화

by 이성윤

K팝이 다국적 멤버 구성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였다면 K콘텐츠는 장르에서 '다양성'을 적극 수용했다. 한때 K콘텐츠는 어떤 장르도 결국에는 로맨스로 귀결되곤 했다. 가난한 여주가 부잣집 2세 남주를 만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하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K콘텐츠의 주를 이뤘다. 첩보·의학·법학 등의 드라마에서도 장소와 상황만 다를 뿐 여주와 남주가 사랑하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건 같았다. 그랬던 K드라마가 다양한 장르물을 선보이자 대중들은 열광했다.


'싸인', '시그널' 등으로 K드라마에서 장르물 시대를 연 김은희 작가는 '킹덤'으로 세계인을 홀렸다. 사극에 좀비물을 더한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은 K콘텐츠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미국 포브스 경제지는 '킹덤 2'를 최고의 좀비쇼라고 평가했고, 영화·드라마 평점 전문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신선도 지수 100%를 받았다. 또 2020년 영화·드라마 정보 사이트 'IMDB' 인기 순위에서 킹덤 시리즈는 인기 순위 9위에 오르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왕좌의 게임'을 넘어서기도 했다. 킹덤 시리즈 이후에 등장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로맨스라는 기존 K콘텐츠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83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에미상 6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황동혁 감독과 김은희 작가는 공개 석상에서 '오징어 게임'과 '킹덤'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넷플릭스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막대한 제작비 지원은 물론이고 시리즈에서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로 지상파에서는 방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극본이 2009년에 쓰였지만 잔혹한 소재라는 이유로 투자자, 제작사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 않나.


오늘날 전 세계가 K콘텐츠에 열광하는 배경에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에 도전한 제작진들과 이를 지원한 넷플릭스가 있다. 즉, '다양성'에 도전했고 그 '다양성'을 지원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양성'으로 세계 정상에 선 K콘텐츠는 세상에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며 전 세계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특히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영예를 안았다. 수상 소식 못지않게 봉준호 감독의 연설도 화제였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 감독은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라고 연설했다. 비영어권 작품은 비교적 즐기지 않는 서구 사회에 다양성에 대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어권 너머 작품의 다양성에 대해 얘기한 것이었다. 1인치 남짓은 자막만 넘으면 훨씬 더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면서 말이다.


K팝과 K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 요인에는 '다양성'이 있다. 그렇다면 K팝과 K콘텐츠의 주된 소비층인 MZ세대는 어떨까? 당연히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지금의 MZ세대는 단군 이래 어떤 세대보다 가장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열려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문화를 빠르게 접하고, 스마트폰 속에서 웬만한 정보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주로 소비하는 K팝과 K콘텐츠 자체가 다양성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소비하고 있는 주체나 다름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MZ세대가 주축이 된 이유도 '다양성'에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다양성 존중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계엄포고령에 따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등 다양성을 해치려 든 것이다. 기성세대는 집회 현장에서 MZ세대가 K팝을 틀고, 응원봉을 흔든 것에 적잖이 놀랐으나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다양성을 소비하는 청년들에게 다양성을 빼앗아갔으니 K팝을 틀고 다양성을 지키러 거리로 나올 수밖에.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K팝과 다양성을 해치려는 K정치 간의 충돌은 향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것이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K팝과 달리 K정치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화] K팝의 성공은 '다양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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