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4화
K문화보다 일찍 아시아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문화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열광했던 홍콩 문화다. 성룡,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등이 주연으로 이끌었던 홍콩 영화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 사이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경상림’, ‘아비정전’, ‘영웅본색’ 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또 성룡은 ‘잭키 찬’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지금도 많은 한국 관광객이 홍콩 영화 촬영지를 보러 홍콩으로 여행을 떠난다. 외국인들이 K팝 뮤직비디오나 K드라마 촬영지를 가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홍콩 영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에 개봉한 영화 '색, 계'를 끝으로 홍콩 영화의 영광은 완전히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홍콩 영화가 몰락한 이유로 '매너리즘'을 꼽는다. 매너리즘에 빠진 홍콩 영화는 아예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렸다. 한때 대다수의 K드라마가 사랑으로 끝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멜로 아니면 무술만 남은 홍콩 영화는 장르의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2000년대 초·중반부터 한국 영화가 아시아권에서 흥행하기 시작하면서 홍콩 영화의 입지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매너리즘과 한국 영화 흥행이 홍콩 영화 몰락의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홍콩 영화가 몰락한 진짜 원인은 정치 체제에 있다.
1997년 홍콩은 약 150년간의 영국 식민지배를 마치고 중국에 반환됐다. 영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홍콩은 영국 체제 아래서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중국에 반환된 뒤로는 각종 검열과 규제가 뒤따랐다. 예술 분야에서 검열과 규제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한다. 당연히 콘텐츠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 홍콩 출신의 감독과 배우들은 일터를 잃었다. 홍콩 영화가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시기가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가능했던 영국 식민지 시절과 달리 중국에 반환된 뒤로부터 홍콩 콘텐츠는 극심한 규제와 검열에 시달렸다. 중국에서는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콘텐츠에 내보낼 수 없다. 범죄, 스릴러 장르는 애초부터 제작이 불가능한 셈이다. 또 정부의 어두운 밑낯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를 다룬 콘텐츠도 방영할 수 없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 '비밀의 숲', 'D.P' 등의 K콘텐츠는 중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콘텐츠다. 이러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 콘텐츠 제작자들은 대부분 권선징악이나 애국주의로 결말을 맺는다. 중국에서 사극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는 이유도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최근 중국에서는 K콘텐츠를 무단으로 베끼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윤식당', '쇼미 더머니', '효리네 민박' 등 K콘텐츠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다가 방영해 논란을 일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중국은 부인하지만 포스터마저 똑같이 제작해 누가 봐도 베낀 것이 명확해 보인다. 중국의 상습적인 표절도 검열과 관련이 있다. 심각한 검열 탓에 새로운 포맷에 도전하는 것보다 이미 검증받은 포맷에 덧붙이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강도 높은 검열과 규제는 중국 콘텐츠의 장르를 잃게 했으며, 감독과 배우들의 도전 정신을 훼손시켰다.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고, 창의성을 잃은 홍콩 콘텐츠는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화] K팝의 성공은 '다양성'이었다.
[2화] MZ세대는 왜 집회 현장에서 K팝을 틀었을까?
[3화] K문화, K정치와 충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