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5화
홍콩은 영국 식민지 시절 비교적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영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했던 건 사실이다. 홍콩 콘텐츠는 극심한 검열과 규제를 맞닥뜨리면서 몰락했고, 검열과 규제를 만들어낸 것은 중국 정치였다. 그렇다면 중국의 정치 체제는 어떨까?
중국은 1당 체제로 공산당만 존재하며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최고 존엄과도 같다. 누구도 공산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공산당 위에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중국에는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종교마저 공산당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종교의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종교의 중국화란 2015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실시한 정책으로 종교를 공산당의 통제하에 두는 것을 말한다. 공산당은 종교에도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불어넣는 걸 목표로 한다. 공산당은 교황청과 협의 없이 중국 내 교구를 통합했고 가톨릭 주교를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2022년 11월 중국 당국은 장시성 난창의 천주교 교구 5개를 통합해 장시 교구를 세웠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2023년에는 중국 천주교 주교단의 선빈 주석을 상하이 교구 주교로 임명했다. 전 세계에 모든 천주교는 교구 설립 및 해산, 주교 임명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교황에게 있지만 중국만큼은 예외인 것이다.
중국은 천주교뿐만 아니라 중국 내 개신교, 이슬람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신장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위구르족(이슬람)을 재교육 수용소에 강제 수용해 이슬람교를 부정하고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있어 국제 사회가 비판에 나섰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종교(신)마저 공산당 위에 설 수가 없다.
또 공산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서도 안 된다. 세계적인 중국 IT 기업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지난 2020년 중국 금융당국에 대해 비판적인 연설을 한 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 마윈의 연설 후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에 반독점 조사를 착수했고, 알리바바 계열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도 돌연 중단시켰다. 또 마윈은 앤트그룹의 대주주 지배권도 내려놓게 됐다. 마윈이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추자 일각에서는 실종설까지 제기됐었다. 마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 누구도 중국 당국을 비판한다면 상상 이상의 제재가 뒤따를 것이란 경고였던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종교나 대기업 총수도 공산당의 막강한 통제 하에 두고 있다. 이런 환경이니 콘텐츠에 대한 검열과 제재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강한 공산당의 1당 체제 외에도 중국 문화의 성장을 가로막는 정치 체제는 또 있다. 바로 중국의 투표 방식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간접 투표로 대표자를 뽑는다. 물론 중국에서도 5년에 한 번씩 직접 투표로 한국의 구·군의원에 해당하는 구(區)·향(鄉)·진(鎭) 기층(基層) 인민대표는 뽑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간접투표로 진행된다. 구·향·진 인민대표가 상위 기관인 성(省)급의 대표를 뽑고, 성급 대표자는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자를 뽑는 방식이다.
그러나 직접 투표로 뽑는 기층인민대표의 후보자는 중국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만 출마할 수 있다. 사실상 직접 투표도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은 후보자만이 출마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에는 선거 운동도 없다. 한국은 선거철이면 후보자의 벽보, 현수막 등이 길거리에 도배되고 후보자들은 길거리로 나가 시민들은 만나느라 분주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의 유명 아이돌은 국민이 프로듀서가 되어 직접 뽑는 방식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었다. 연습생들은 시청자 앞에서 매력과 끼를 발산하고, 시청자는 프로듀서가 되어 마음에 드는 연습생에게 투표하고, 시청자에게 많은 표를 받은 연습생이 데뷔하는 '직접 투표' 방식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녹아 있었다. YG에서 블랙핑크에 이어 7년 만에 공개한 걸그룹 '베이비 몬스터'는 팬들이 연습생부터 데뷔 과정을 다 지켜봤다. 또 현재 K팝 대표 걸그룹인 ‘르세라핌’, ‘아이브’의 멤버들은 대국민 오디션(프로듀스 48)을 통해 데뷔했다.
과연 당국의 심사에 통과한 이들만 출마할 수 있고, 선거 운동을 하지 않는 중국에서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중국의 정치 체제의 근간인 '간접 투표'에 위배되며,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는 중국 투표제의 근간이 뒤흔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강력한 1당 체제는 검열과 규제를 만들어냈고, 간접 투표는 중국 인민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데뷔시킬 수 없는 엔터 산업을 만들었다. 이러한 정치 체제에서 탄생한 중국 콘텐츠나 엔터 산업은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콘텐츠가 단 한 번도 세계 시장 정상에 서지 못한 이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홍콩 문화가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는 중국의 정치 체제에 있다.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화] K팝의 성공은 '다양성'이었다.
[2화] MZ세대는 왜 집회 현장에서 K팝을 틀었을까?
[3화] K문화, K정치와 충돌하다
[4화] 정치는 어떻게 홍콩 영화를 몰락시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