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쫓던 J팝은 어쩌다 K팝을 벤치마킹하게 됐을까.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6화

홍콩 못지않게 세계 문화를 제패한 아시아권 국가가 하나 더 있다. 일본이다. 일본 문화의 영향력은 1990년대 홍콩보다 더 파급력이 컸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 만화 3대장으로 불리는 나루토·원피스·블리치는 2000년대 초반 아시아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궈냈다. 그중 원피스는 지금까지 5억 2천만 부가 팔리면서 단일 작가가 발행한 단일 만화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포켓몬스터, 드래곤볼은 1990년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MZ세대의 동심으로 남아있다. 포켓몬은 2021년 기준 전 세계 콘텐츠 IP 매출 1위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3위), 스타워즈(5위) 보다 높았다. 또 헬로키티가 2위, 호빵맨이 7위, 마리오가 9위로 전 세계 콘텐츠 IP 매출 탑 10에 일본 IP가 4개나 있었다. 또 닌텐도·플레이스테이션 등은 전 세계 게임 시장을 주름잡았다.

J팝의 위상도 대단했다. 2000년대 초반 2세대 K팝 스타들이 막 해외진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음악의 중심은 J팝이었다. 일본의 음반산업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컸다. 당시 한국의 주요 기획사들도 J팝을 벤치마킹하기 바빴다.

전 세계 콘텐츠 IP 매출 탑 10 중 4개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문화는 여전히 높은 영향력을 자랑하지만 예전만큼의 위상은 잃어버렸다. 만화의 종주국인 일본에서 최근 한국 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카카오가 론칭한 일본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일본 앱 만화 시장 점유율 1위이며, 네이버의 '라인망가'는 일본 디지털 만화 통합 거래액 1위에 올랐다. 국내 대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시즌2' 애니메이션은 일본 아마존프라임 TV쇼 부문 시청 1위를 기록했으며 일본과 홍콩 등 넷플릭스 11개국에서 주간 탑 10을 기록했다. K웹툰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전문가들은 K웹툰이 K팝·K콘텐츠를 잇는 차세대 한류로 떠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J팝을 벤치마킹했던 K팝은 J팝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J팝이 K팝의 음악과 콘셉트를 벤치마킹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활동하던 아이돌 멤버가(AKB48, 사쿠라) 한국으로 넘어와 다시 데뷔할 정도로 K팝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커졌다. 최근 들어 아이묭, 유우리 의 J팝이 다시 흥행하고 있지만 과거 J팝 열풍이 정점에 섰을 때와 비교하면 미미할 뿐이다. 한때 세계 문화를 제패하고, K팝이 벤치마킹했던 일본 문화는 어쩌다 K팝에 역전된 걸까?

전문가들은 J팝의 쇠락 원인으로 '폐쇄성'을 꼽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음원시장은 디지털 음원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J팝 음반 시장은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실물 음반 판매 저조를 우려해 디지털 음원 공개를 꺼려했던 것이다. SNS 활동에도 소극적이었다. 반면 K팝 스타들은 일찍부터 SNS 활동을 시작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BTS의 성공 배경에는 유튜브,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한 음원 공개와 팬들의 소통이었다. BTS 해외 팬들의 경우 유튜브를 통해 처음 BTS의 뮤비와 음원을 접하고 트위터를 통해 BTS와 소통을 늘려가면서 점점 BTS의 팬이 됐다. 2016년 10월에 발매된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는 2018년 유튜브 2억 5천 뷰를 돌파했다. 일본 국민 아이돌로 불리는 '아라시'는 2019년에서야 공식 유튜브 계정을 개설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음원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또 '다양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던 K팝과 달리 J팝 기획사들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소극적이었다.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고집한 결과 J팝은 K팝을 벤치마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J팝은 왜 폐쇄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걸까? 홍콩 문화가 검열을 받게 된 원인에는 정치 체제가 있었듯, J팝이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 이유도 일본 정치 체제에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화] K팝의 성공은 '다양성'이었다.
[2화] MZ세대는 왜 집회 현장에서 K팝을 틀었을까?
[3화] K문화, K정치와 충돌하다
[4화] 정치는 어떻게 홍콩 영화를 몰락시켰나
[5화] 중국 콘텐츠는 왜 세계를 장악하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