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도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 제대로 들어준다거나,
우리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들어보려합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들의 목소리,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흔히 접하는 단어 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니트족’은 일을 하지 않으며, 일할 의지가 없는청년 무직자를 지칭한다. 쉽게 말하면 ‘무업자(無業者)’이지만, 취업에 대한 의욕이 없는 자발적 백수이기 때문에 일할 의지는있지만 현재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프리터족’ 과는 다른 개념이다.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 10명 중 4명 정도는 니트족의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니트에 대한 인식 정도가 다른 독자들을 위해 기사를 이원적으로 구성해보았다. NEET족을 알고 있다면 (2)번 기사를, NEET족을 알지 못한다면 (1)번 기사를 읽어 내려가길제안한다.
니트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경제상황이 나빴던 1990년대의 유럽이었다. 경제상황과 고용환경의 악화로 인해 청년실업자들이 취업을 포기하면서 니트족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현재 사회에선 그들을 사회불안을 유발하는 사회병리현상으로 지적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니트족은 소비능력이 부족하기에, 그 인구가 증가할수록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리고 국내총생산도 감소시키는 등 장기 경제불황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니트족이 현재 100만명이 넘은 상황이다. 이는 2013년 기준 OECD 국가 중3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통계에 잡힌 ‘시험수험생들’ 즉 공무원시험 같은 자격시험 준비자들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과거에는 개인의 불성실로만 치부되었던 니트족의 존재가 시간이 갈수록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기업이 세계화, 자동화 됨에 따라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들이 원하는 정규직 일자리는 외주화 바람까지 겹쳐 훨씬 줄어들었고, 질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은 점점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영어학원, 자소서 과외, 봉사활동 등에 심지어 성형까지 감수하며 스펙을 쌓기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모두가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취업 경쟁에서 밀려난 청년들을 만들며, 밀려난 청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혹은 남보다 나은 ‘경력’을 쌓는다는 핑계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구직을해야 하는 고리를 걷는다. 적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 이것이 청년 실업의 현실이다. 안정되지 못한 삶은 결국 구직의사를 사라지게 하며, 이런 상황 속에서 니트가 증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기에 되짚어야 할 문제는 경쟁으로 피폐한 현실에서 떨어져 나간 청년들의 현재이다.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밖에 없는 상태임에도, 자발적으로 니트를 선택한 이들 중 행복하다는 이들이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현실 때문이다.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니트족에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우리는 사실 이미 누구나 니트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지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니트란 단어는 현재의 청년들과 가장 직접적으로 얽혀있지만 그 인지도는 낮다. 니트와 니트족이라는 단어를 접해본 적이 없거나, 그 단어를 알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이해는 있어도 니트족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조차 니트에 대해 모르거나 막연히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청년임에도 청년의 관심에서 멀어져 소외 받는 니트족은 말 그대로 ‘청년 바깥의 청년’이었다.
청년들은 왜 무의식적으로 ‘나는 니트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그들을 청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거리로 나가 인터뷰를 하였다. 과연 니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청년들에게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니트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기자가 뜻을 설명해주면 그제서야 들어본 적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니트에 대한 비슷한 인식 정도와는 다르게 니트에 대한 생각은 극명하게 갈렸다.
“그냥 굉장히 무책임한 사람이요. 사회에 잘 적응 못하는”.
“정말 너무 한심해요.”
길거리에서 홍보를 하던 한 아르바이트생과 자신의 남편이 니트족이라는 30대 여성은 니트족에 대해서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슬픈 것 같아요. 저도 20대인데, 사회적상황이20대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도 곧 될 지도 모르겠어요.”
몇몇 대학생들은 반대로 니트족에게 공감을 하고, 니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니트족은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니트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에 “행복!” 이라고 답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과거 자신이 니트였던 적이있다고 했다. 의외인 것은 니트였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심한 사람, 사회부적응자라고 생각하는 니트. 지금도 니트가 될 까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니트로 있었을 때가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일 수 있었을까? 그녀와의 인터뷰를 수필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다.
<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 >
겨우 3개월짜리 일이 하나 끝났다. 출근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20분에 한 대씩 오는 경의중앙선 열차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한 대라도 놓치면 그날은 지각이었고, 운이 좋지 않은 날엔 제때 올라탄 열차가 지연을 계속하다 지각하는 수도 있었다. 자주 오지 않는 열차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올라타는 것부터 고역이었다.
출근을 하면 가장먼저 하는 일은 커피 마신 컵을 닦는 일.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해야 하는 일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3개월이 지나고, 동료였던 이들이 건네는 술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퇴사했다. ‘계약직 사원’ 이라는 이름을 떼어 버리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세 달 뒤엔 긴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짧은 기간만 나를 써줄 회사는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일자리를 찾는 일이 귀찮기도 했다. 그냥 의지가 없었다. 일 할 의지도 없고 뭘 배우지도 않은 내가 속한 곳은 방구석이었다. 백수가 되고 가장 좋았던 일은 나의 시간을 내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을 허비하고 말았지만.
하루 일과는 이러했다. 오후 2시까지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무조건 스마트폰부터 손에 쥐었다. 그냥 두 시간쯤 서핑을 하면,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여섯 시쯤 퇴근할 거 같으니 저녁 먹자고. 그럼 씻고, 준비를 하고 나면 약속 시간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면 다른 이들의 하루는 끝이 났다. 나의 하루의 시간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간을 착실히 따랐다. 나도 잠자리에 들고, 다시 스마트폰을 들어 흰 바탕과 검은 활자에 집중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가끔은 나도 내가 한심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날들을 함부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여행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지난 3개월은 내게 필요했던 시간이었다는 걸. 매일 지옥철에 치이고, 사람 관계에 치이고, 실적과 주문, 예산과 같은 작은 돈의 단위에 일일이 예민해야 했던 내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가을이 오면 미뤄뒀던 ‘공부’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침대에 늘어져만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불안해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내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그렇지 않았다. 덕분에 몸무게도 4kg나 늘었다. 몸의 긴장도 풀고 마음의 긴장을 풀기에는 어떤 단어도 입지 않은 나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니트였던 시간이 처음으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니트였던 시간이 재충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더 활기차게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남자친구는 다그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녀가 더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얘는 잠깐 쉴 시간이 필요했구나.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리도 비우고 그럴 시간이. 요즘엔 더 예뻐요. 활기도 훨씬 도는 것 같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에도 그녀는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반면, 처음부터 그녀를 이해해 준 친구도 있었다. 취업이 바라는 대로 되지도 않는 현실에 쉴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며, 자기도 언제든지 니트가 될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행복이라며 응원을 해줬다고 한다.
우리가 니트족에 집중한 이유는 이러한 사례가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에 녹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극심한 취업난으로 청년실업이 최고치에 달한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입사한 직장을 버리고 한발 물러나 진정한 ‘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을‘갭이어족’이라고 하는데,이 ‘갭이어족’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하여 공부나 일을 하는 사이에 갭을 두어 쉬는 무리를 뜻하며, 최근 우리나라에선 회사에 만족하지 못해 자아발견을 위해 퇴사 후 휴식기를 갖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있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였을까? 그 원인을 살펴보면 학창시절부터 취업, 그리고 취업 이후의 회사생활까지 인생 전반에 아울러서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쫓기듯 살아오던 청년들이 회의감을 느끼고, 진로는 물론 삶의 의미에 물음을 던지며 갭이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잠깐 멈추어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갭이어와 니트는 닮아있다. ‘갭이어족’, 나아가 ‘니트족’의 삶을 용기라고 봐야 할 것인지 무모라고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사실 당사자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주위의 시선이 어떻든, 이들은 자신을 찾기 위한 이행기적 과정을 자발적인 용기로 선택함으로써 삶의 만족감이최대치에 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과정을 삶에 대한 확신과 뚜렷한 방향설정을 위한 기회로 삼음으로써, “그 다음엔 뭐 할거야?”라고 묻는 사회와 자기 스스로에게 ‘최고의시간’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에 그들의 삶은 불안이나 걱정이 아닌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사회밖청년들] 인터뷰 연재
: 글/사진. 고지현, 권하은, 신지원, 윤홍찬, 이소영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