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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Feb 21. 2020

실험문학기획_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존중하는 것

청년시민발견 개인트랙 ‘김지원’

2019년 한 해 동안 무중력지대 성북(무중력지대 성북@아리랑고개, 이하 무지랑)은 사회의 중력에서 벗어나 삶의 궤적을 그리는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한해의 소중한 만남을 담아 이들 청년의 이야기가 모두의 경험이 되도록 공유합니다. 


이번에는 사회·세대·도시의 문제를 커뮤니티의 움직임으로 풀어가려는 청년들의 시도를 지지하는 청년시민발견, 그중 실험문학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시도한 '김지원'님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인터뷰 참가자: 김지원

관심/주제: 언어 자체를 실험하고 도전하는 글 

참여사업: 청년시민발견

홈페이지/SNS: 

https://shantaljeewon.wordpress.com/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용인해주는 일. 그게 중요해요.
 

Q. 청년시민발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등단 없는 실험문학’이란 프로젝트 명으로 청년시민지원의 개인트랙에 참여했어요. 우리나라의 등단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려고 시작했지요. 실험문학이란 이름을 내세우지만 내러티브가 강한 기존 형식의 글을 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Q. ‘실험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독특해요. 

미국에서 문학을 공부할 때, 장르를 시 혹은 소설 등의 방식으로 명확히 분류하진 않았어요. 글 자체도 무척 다양했죠. 이런 맥락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쓴 작품들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면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현재로썬 저나, 저와 비슷한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문학을 ‘실험문학’이라는 큰 범주로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요. 


Q. 미국에서 문학을 공부한 경험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네요. 

문학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인식이 매우 다른 것 같다고 느껴요. 미국은 인종과 국가가 다양하게 모이는 나라라, 스페인어와 영어를 같이 쓰는 식으로 언어를 섞어 쓰는 경우가 자주 있죠. 아트북이나 독립서점도 훨씬 다양하고요. 각양각색의 소규모 출판사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한 5년 사이 독립출판이 꽤 활발해졌는데 미국은 그 역사가 훨씬 길어요. 책과 관련된 장르 및 커뮤니티가 훨씬 많이 구축돼 있어요. 


Q. 실험문학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느껴졌나요?

실험문학을 통해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장르들을 보고 나니, 글로 더 큰 다양성이 가능하겠다고 느꼈어요. 문학이 꼭 현실과 같은 필요는 없잖아요. 언어에 대한 감각이나 쾌감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게 문학이니까요. 한국의 대부분 픽션 장르는 스토리텔링 중심이에요. 내러티브 스토리 없는 글들은 드물죠. 대부분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현실을 베끼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기대했던 부분은 뭐였어요? 

함께 글을 쓰는 소규모 집단이 생기는 거였어요. 실험문학의 의도를 이해하는 안전한 집단이요. 이들에게 입지가 생긴다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장르에 관심을 갖고 실험문학에 대한 개념을 가지게 될 것이라 믿어요.



Q. 모임의 진행과정은 어땠나요? 

처음 모임에서는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관심 장르나 읽고 싶은 책이 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도움 되는 책을 사거나 도서관을 둘러봤죠. 이후에는 2주일에 1번씩 만나 팀원들 각각 누군가가 봐주면 좋을 책을 골라 발제했어요. 글 과제를 서로 내주면 결과물을 사람 수만큼 뽑아오게 해요. 쓴 사람이 소리 내서 읽으면 함께 들은 사람들은 글의 좋은 부분이나 발표자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을 찾아주며 의견을 더했어요. 다 같이 을지로 인쇄공장에 찾아가 단가를 낮추는 방법도 알아봤어요. 모임 중반 이후부터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글 쓰는 데 집중했죠. 쓴 글들을 디자인하고 편집하는 과정까지 거쳐 픽션과 여행기, 사진과 텍스트로 구성된 출판물들이 나왔어요.


Q. 팀원들이 쓴 작업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보민은 유럽을 여행하며 본인이 경험한 실패담에 대해 썼어요. 여행 장소에 대한 감탄보다 개인적인 성장이나 소회를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나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도 다뤘고, 한국에서의 본인 자리나 여행지에서 만난 역사적 흔적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어요. 

실험문학이란 장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글을 쓴 건 은지에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실험문학 형태로 써냈죠. 유물과 유적지, 궁궐 등을 소재로 썼는데 기획은 건조하나 결과물은 매우 해체적인 텍스트로 작성됐어요. 문체 등의 부분에서 발제한 책들이 많이 도움됐죠. 


민수는 원래 영상작업을 하던 사람이라 긴 호흡의 글을 쓰기보다 영상에 들어갈 텍스트 부분을 필요로 했어요. 본인이 작업한 영상을 책으로 만들었죠. 영상을 찍으면서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을 글로 쓰려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스토리라인이 있는 단편소설을 썼어요. 이제까지는 영어로 실험문학을 쓰는 환경에 있어서 한국어로 된 글을 잘 못 썼는데요. 이번 시도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판타지와 섞어 쓰게 되었어요.


Q. 본인에게 이번 프로젝트가 의미 있게 다가왔을 것 같아요. 즐거웠나요?

프로젝트의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커뮤니티를 매우 갖고 싶었거든요. 언제든지 메시지를 보내 내가 쓴 글을 읽어봐 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는 것도, 글을 기획 및 작성하고 편집하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책이라는 오브젝트를 갖게 된 것도 그렇고요. 

모인 사람들끼리 의지가 되고, 서로의 글을 읽어봐주고 도움 줄 사람이 있어야 작업이 지속돼요. 그런 거 없이 혼자 글 쓰고 작업하는 건 무척 힘들어요. 힘써서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면 모임이 쉽게 와해되더라고요. 다른 팀원이 1 정도의 힘을 쓰면 저는 4, 5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Q. 이번 프로젝트 후에 계속 도전하고 싶은 부분이 생겼나요?

한국어와 영어를 같이 쓰는 것이요. 두 언어의 문장 구조가 다른데, 제대로 번역이 안 된다면 아예 두 언어가 서로의 장애물로 기능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 낀 제 처지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든 것도 있을 거예요. 영어던 한국어던, 내가 쓸 언어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요.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잖아요. 모든 누군가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고요. 사실 제가 쓰는 한국어는 문법이 이상해요. 영어를 깊이 이해하기에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평생 쌓아온 깊이를 이해할 수 없고요. 하지만 꼭 이해해야만 하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내가 실패한 것도 아니에요.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사용하는, 애매하지만 저는 둘 다인 거예요.


Q. 소수 취향으로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을까요?

원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뭘 시도하려면 무척 많은 이유가 필요할 것 같잖아요. 소수자를 대변해야 한다거나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등등요. 하지만 사실은 그런 이유가 필요 없을 수도 있는 거죠. 개인이 가진 가장 이기적 욕구를 인정하는 자체가 정치적이지 않나 싶어요. 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예요. 그저 하고 싶기 때문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개인의 욕구를 행동으로 이행하고 인정해주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서로 멋있다고 같이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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