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민발견 모임트랙 ‘사서로, 살다’
2019년 한 해 동안 무중력지대 성북(무중력지대 성북@아리랑고개, 이하 무지랑)은 사회의 중력에서 벗어나 삶의 궤적을 그리는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한해의 소중한 만남을 담아 이들 청년의 이야기가 모두의 경험이 되도록 공유합니다.
이번에는 사회·세대·도시의 문제를 커뮤니티의 움직임으로 풀어가려는 청년들의 시도를 지지하는 청년시민발견, 그 중 직업의 인식개선을 위해 자체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사서로, 살다’ 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터뷰 참가자: 육지혜, 김현진
관심/주제: 사서에 대한 인식개선
참여사업: 청년시민발견
홈페이지/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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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면 늦는 대로, 일할 때 사업목표 달성하듯 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거죠. 이런 저희들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해요.
Q. 사서로, 살다 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지혜: 저희는 사서인식 개선 프로젝트 ‘사서로, 살다’라고 합니다. 보통 줄여서 사살 프로젝트라 불러요. 내가 사서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기보다 세상에서 사서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대중에게 사서에 대해 알리는 게 인식개선에 도움된다고 생각해 관련 활동을 프로젝트 단위로 해요. 도서관계에 있는 다른 사서들에게 저희를 소개할 때 ‘도서관계의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라고 하고 있어요. 관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개인 단위로 해내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진: 올해부터 사살 팀에 합류했어요. 앞서 설명해주신 것처럼 사살 활동을 통해 내가 사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어요.
Q. 사살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지혜: 사서가 된 후 “나 취업했어”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사서라는 직업이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도서관 현장에서 만나는 이용자분들조차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르시더라고요. 제가 사서 일을 한 지 어느덧 3년이 됐는데, 이런 고민을 기반으로 사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현진: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너희는 책을 좋아하니까’ 라던가 ‘편한 직업’이라 여기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거죠. 대중이 원하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Q. 대중의 인식개선 문제도 있겠지만, 해결하고 싶은 사서계 내부의 문제들도 있을 거 같아요.
지혜: 사서들은 대부분 공공 도서관에서 일해요.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도서관의 모 기관이 되는 형태인데요. 그러다 보니 사서의 고용주는 결국 사서가 아니에요. 사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일반 도서관의 이용자와 같죠. 너는 사서니까 일 편하게 하겠지. 그런 시선이 있어요.
현진: 같은 지역의 도서관이어도 다른 재단 소속이면 기관 간의 협업이나 의사소통이 잘 안 돼요. 도서관 관종(종류)에 따라서도 사서 선생님들끼리의 소통이 부족하고요. 지역과 관종을 넘어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사살 팀의 그간 활동 과정이 궁금해요.
지혜: 초반에는 대부분 나이와 경력이 비슷한 사서들이 모였어요. 저희끼리 사서에 대해 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싶어 나이 많은 선배 사서들이나 특이한 일을 하는 사서들을 인터뷰해보기도 했죠. 이런 시도가 개인 차원의 문제제기로 그치는 게 아쉬웠어요. 개인으로 인터뷰하다 보니 익명성 문제도 생겼고요. 팀 차원에서 사서들이 모이는 원탁회의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렇게, 청년시민발견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이기도 한 사서 공론장의 기획이 시작됐습니다. 두 번의 공론장을 진행했는데 한 번은 고용형태에 대해, 두 번째는 휴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Q. 사서 공론장에 참여한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인상 깊게 남은 의견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혜: 참여한 사서들의 동기도 신기했어요. 왜냐면 사서로, 살다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온 사서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참여해볼까”하는 동기로 자리에 참석해주셨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주셨어요. 준비 과정에서 사서들의 참여와 발언이 적을까 제일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진행해보니 다들 하고 싶었던, 마음속에 품고 있던 현장 이야기가 참 많았어요. 인상 깊었던 점은 논의가 발전해나가면서 ‘고용형태’, ‘근무형태’의 주제가 업무분장, 조직형태, 급여, 사서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펼쳐 나갔던 점이에요. 그리고 다른 도서관 사서랑 교류가 처음인 사서들도 많아 분위기가 참 활기찼어요.
Q. 활동 과정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나요?
현진: 도서관계 내부적으로는 입소문을 많이 탄 것 같더라고요. 사살팀의 활동을 보며 “나도 해볼까” 혹은 “나도 공감 간다” 싶은 게 있었던 거죠. 응원해주기에도 쉽고 같이 뭔가를 해보고 싶은 분위기가 생겼어요.
지혜: 사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서들의 현실을 담은 인포그래픽을 제작한 적 있어요. 각 도서관들에게 쓰시라고 배포해드렸더니 출력본을 붙여놓은 곳들이 있더라고요. 그때 기뻤죠. 그렇다고 피부에 느껴질 만큼의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에요. 도서관계 행사가 있을 때 저희 이름이 가끔 거론되는 정도인 거 같아요.
Q. 프로젝트 진행 전과 후에 사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생겼을까요?
지혜: 처음에는 사서들 스스로 본인 직업에 대한 관심이 낮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서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요.
같은 목적을 갖고 있어도 도서관의 인식개선과 같은 부분을 이야기할 때 미세한 관점의 차이가 있었어요. 도서관에 대한 철학이 다를 수 있고, 사서가 하는 업무 역할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달라요. 이렇게 사서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제 생각을 많이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다만 사서들마다 근무시간과 휴무일이 다르고 주말근무도 하다 보니, 함께 하고 싶어도 만나기 어렵다는 게 가장 아쉬웠어요.
현진: 도서관계와 관련해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도서관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 두려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최근에 도서관계를 떠난 사람들이 쓴 책을 통해 도서관계를 독려하는 시도도 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시선도 있었어요. 업계가 좁다 보니 내가 드러날 수 있다는 데 대한 불안감도 느꼈죠. 그래도 다른 사서 선생님들이 활동하는 걸 보며 제 자신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어요.
Q. 꼭 사서가 아니더라도 자기 문제를 ‘프로젝트’로 해결하려는 개인 혹은 모임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응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혜: 쉽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사서라는 직업 특성 때문에 프로젝트 단위로 뭔가를 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프로젝트 단위로 시도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거 같아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플랫폼도 많아요. 공간이나 물품을 대여해주는 곳, 크라우드 펀딩 같은 부분도 있죠. 크게 겁먹지 않고 일단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전에 선배 사서 분이 꼭 목표나 시간에 맞출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얘기해주신 게 기억나요. 늦으면 늦는 대로, 일할 때 사업목표 달성하듯 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거죠. 이런 저희들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해요.
현진: 저는 소극적이라 뭔가를 시작할 때 많이 두려워하는 편인데요. 사서로, 살다 같은 모임이 있으면 발을 한번 내디뎌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