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동시에, 각자 알아서

인테리어 마인드 (2) 주방

by 케이진
둘이, 동선이 부딪히지 않게요


인테리어 디자인 상담하면서 주방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니즈였다. 아일랜드도 중요하고 수납도 중요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둘 다 주방에 있을 때 서로에게 ‘걸리적거리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요리에 큰 관심이 없다. 내 꿈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보면 ‘매 끼니를 맛집 메뉴로 바꿔가며 사 먹을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하며 다닌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1년에 요리를 ‘하고 싶어서’ 하는 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끼니는 보통 남편이 담당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서부터는 나도 더 이상 주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군다나 입 짧고 예민한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엄마가 해준 밥은 그나마 잘 먹으니.(아마 내 입에도 맛있게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난 요리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끼니때가 되면 나는 아이의 밥상을, 남편은 우리의 밥상을 차린다. 또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에 점심때가 되면 우린 각자 자기의 메뉴를 만든다. 나는 토스트를, 남편은 삼겹살을 각자 만들어 마주 앉아 먹는 것이다. 신혼 때는 요리를 안 하는 대신, 남편이 만드는 메뉴에 100% 동의하며 먹었기 때문에 취향이랄 게 없었는데, 지금은 어차피 요리를 피할 수 없다면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덕분에 우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음식 취향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결혼 7년 만에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의 주방은 넓고 커야 했다. 둘이서, 동시에, 각자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사 갈 집의 주방은 유난히 좁았다. 구축 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나 폭도 좁고 구조도 별로였다. 주방은 우리의 미션이자 도전 과제였다. 디자인 미팅을 하기도 전에 우리는 스케치업으로 주방 버전만 몇 번을 바꿔가며 그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머리를 짜내던 어느 날, 남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원하는 주방은 '키친핏 냉장고'가 있어야 완성될 거 같아. 냉장고 새로 사자!!
오… 우리 예산은 돼?
예산이 빠듯하더라도, 다른 걸 줄여서라도, 냉장고는 바꿔야겠어.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오케이!


돈 쓰는 일엔 한마음이다. 냉장고 모델을 결정하고 그 사이즈에 맞춰서 다시 스케치업을 그려보는데, 이번엔 후드와 수전의 위치가 영 거슬린다. 소위 말하는 '각'이 안 나온다.


차라리 이쪽으로 빼는 건 어때?
아냐, 최대한 수전이랑 후드는 안 건드리는 게 좋아. 자리를 옮기면 돈이 더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옮기는 과정에서 탈이 날 수도 있어.

세상 모든 걱정과 위험 가능성을 끌어안고 사는 남편과 함께 의논한다는 건, 나에게 꽤나 답답한 일이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나열하고 그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자는 게 남편 스타일이고, 확률이 낮은 문제까지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적당히 진도를 빼고, 문제가 실제로 닥쳤을 때 잘 해결하자는 게 내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남편 의견을 조금 더 따르기로 한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긴 후에 해결하기엔, '인테리어'는 너무 판이 큰 공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남편의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기도 했다.


이사 갈 집은 비어있는 집이 아니니, 우리가 확인하고 싶다고 매번 찾아가서 눈으로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집을 둘러봤을 때 기억을 최대한 떠올려 본다. 정말 수전은 그곳에 있었는가? 후드는 거기였나? 크... 맞는 것 같은데, 차라리 내 기억이 틀렸으면 좋겠다 싶은 이 마음. 인테리어 업체와 함께 실측하기로 한 날짜만 손꼽아 기다려본다.


드디어 그날! 실측을 다녀온 남편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후드가 우리가 생각한 자리가 아니었어! 거기가 아니라, 이쪽이었더라고. 우리가 생각한 대로 냉장고를 벽으로 붙이고 1자 라인으로 싱크대를 길게 빼는 버전이 가능할 것 같아! 유후.


둘이 신이 나서 손 붙들고 할머니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니, 아이가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다.


아주 좋은 소식이야. 엄마랑 아빠랑 둘이 같이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어!
우와, 그럼... 스테이크 먹을 수 있어요?
... 엥?...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이도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덩실덩실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길고 긴 싱크대 상판. 꼭 아이스링크 같네;

이사 와서 보니, 길고 넓은 싱크대의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바로 손님이 왔을 때 빠른 접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싱크대 상판이 넓으니 식사를 미리 준비해두고 한 번에 옮기기가 가능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도 식기를 한 번에, 빠르게 치울 수가 있어서 집주인도 디저트&수다 타임에 바로 합류가 가능했다.


단점은 주방이 길어서 동선도 길다는 점이다. 특히 수저 서랍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보니 다른 방향에서 요리하다가 갑자기 숟가락이 필요할 때, 저만치 걸어가야 하거나 '나, 숟가락 하나만'이라고 부탁하게 된다. 주방에서의 '기동력'이 좀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요리하기엔 이만한 주방이 없다. 남편은 인덕션 앞에서 삼겹살을 열심히 구우며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그 옆에서 나는 아이가 기피하는 나물 반찬을 잘게 썰어 유부초밥 속에 열심히 숨기고, 에어 프라이기 안에는 나의 토스트가 맛있게 구워지고 있는 주방.


이만하면 우리에겐 아주 훌륭한 주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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