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아하지만 싫어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그레이스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건 대략 2014년 즈음이다. 한국에서의 첫 회사에 입사할 즈음 블로그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곧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남아공에 해외 취업을 하게 되었다. 입사 첫 날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잠비아라는 나라에서 3개월을 지내야 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미지의 땅. 처음으로 집을 떠나 살게된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며, 그날 찍은 사진들을 올리며, 쓸쓸함을 달랬다.

잠비아 첫 출장에서 찍은 사진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었지만 쓰는 것 자체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느낌이었달까. 가끔 그 때의 글을 찾아보곤 한다. 제목조차 없는, 일기와 다를바 없는 글이 당시의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떠오르게 해서 좋다.


소소하게 시작한 블로그는 내가 두바이로 이사를 가며 더 활발해졌다. 아마 그쯤 부터였을까. 언어 공부를 하며 배운 표현들, 여행을 다니며 알게된 정보, 쇼핑한 물건의 후기 등을 열심히 올렸다.


조회수가 점점 올라가니 광고글 의뢰가 들어왔다. 글 쓰기로 돈을 벌 수 있다니. 신세계였다.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서비스 후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저 좋아서 쓰던 글은 어느새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활동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더 많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썼고, 검색결과 몇 번째에 뜨는지가 중요해졌다.


그 후로는 이전처럼, 그냥 좋아서 (생각없이), 하루를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쓸 수 없게 됐다. 글쓰기에 들인 시간은 반드시 무언가로 되돌려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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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마케팅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된 마케팅 아티클을 번역해 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생각을 쓰는거보다 훨씬 쉬우니까.


‘가치있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마크 로렌스의 명언처럼. 번역이라고 품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비교적) 쉽게 쓴 글은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수많은 좋은 피드백을 받아도, 늘 부정적인 코멘트가 신경이 쓰였다. 꽤 오랜 시간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내 관점과 의견을 담은 오리지널 콘텐츠을 쓰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특히 예쁜 런던 시내

격주로 뉴스레터를 보내고, 매주 네이버 블로그를 발행했다. 그것도 4년 동안 말이다.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를 하며 거기에 글까지 쓴 자신이 새삼 대단하다.


나에게 이 4년이란 시간은 엄청난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항상 글감을 찾아 헤맸다. 퇴근 후 저녁과 주말은 늘 뭔가를 써야한다는 부담감에 편히 쉬지 못했다.


이 시절의 글쓰기는 나에게 완벽하게 노동이었고 고통이었다. 더이상 글을 쓰는 행위에 ’나‘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남을 위해 그리고 뭔가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게 고역인 날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했고, 글을 매개로 하는 일을 벌여나갔다. 유료 커뮤니티, SEO 글쓰기 캠프, 그리고 글쓰기 피드백 툴도 론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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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이후로 네이버 블로그에는 더이상 글을 올리지 않았다. 시간차는 있지만 서서히 해오던 활동을 줄여나갔다. 그리고 출장이 몰아치던 지난 10월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중단했다.


최소한 5년을 이어온 뉴스레터 만큼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피곤함을 버티며 글을 썼고. 귀국 후 이어지는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11월 30일 올해 마지막 호를 발송했다.

기차 타고 사무실에서 귀가하는 길, 무지개를 봤다

나에게 글쓰기의 역사는 곧 애증의 역사다.


어느 순간부터 내 글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거고, 그래서 뜨거운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정보성 글은 딱 필요할 때만 읽는다. 반면, 글쓴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적나라한 감정이 담긴 글들은 구독해두고 찾아서 본다.


‘근데 나는 왜 그런 글을 쓸 수 없는가‘라는 이 의문은 나를 계속해서 괴롭게 했다. 스스로를 몰아부치며 꾸역 꾸역 글쓰기를 지속하던 나는 드디어 그만하기로 마음 먹었다.


억지로 쓸 필요가 없어졌다. 언제까지 써야한다는 시간의 압박, 잘 써야한다는 부담과도 안녕이었다.


‘해야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니 그제서야 마음에 여유 공간이 생겼다. 자유롭게 생각했고, 그 생각을 애써 검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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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을 알게 됐다.


나는 아주 사적인 관계와 생활에 대해 공유하고 싶지 않다. 특히 내 적나라한 감정은 더욱이 그렇다.


그정도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내 일기장과 남편,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 몇명 정도 뿐.


브런치에 있는 많은 글들처럼 익명에 기대어쓰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아니다. 그것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진 상태에서 공유할 수 없는 내용은 스스로 간직하는 편을 택하겠다.


신기하게도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왜일까. 뭔가를 남과 공유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대가도 없고, 작가들처럼 글쓰기기 그저 즐거운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걸까.

집 앞 산책 길, 물에 떠있는 보트 카페

요 몇달, 출장이다 뭐다 바쁜 매일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어느 한 구절이 마음에 강하게 와닿았다.


겉으로 보이는 나와, 안으로 느끼는 내 모습에 괴리가 있었다. 그 틈을 메우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하고 쓰는 것뿐이었다. 물론 철학적인 의미에서, 말은 결코 그것이 묘사하는 것과 같지 않지만 그게 말의 용도이기도 하다.


말은 내부의 것을 외부로 내보내 준다. 생각을 말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공유된 세계로 보낸다. 그 공유된 세계를 우리는 ‘언어’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개인적인 경험을 내보임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 심지어 우리 자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 메트 헤이그의 책 ‘위로’ 중 -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한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글을 쓰며 나의 마음을 더 잘 알아가게 되는 것. 타인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것.


그 과정이 좋고 의미있어서. 혹여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게 보람돼서.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또 언제 갑자기 생각이 변할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만, 나를 알아가는 시간 삼아 부담없이 써내려가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