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
내가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20년이다. 두바이에서 영국으로 이사를 와서 취업이 되자마자 바로 코로나가 터졌다. 애석하게도 내가 런던 오피스에 출근한지 딱 한 달만에 재택근무 모드에 돌입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집에서 일을 하며 필요할 때만 사무실을 가고 있다.
당시 영국은 살벌하게 봉쇄 조치를 내렸고, 슈퍼나 미용실도 자유롭게 갈 수가 없었다. 출퇴근도 안 하고 집에서 일하니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나는 가볍게 탈잉에서 강의에 도전했다. 그 때는 미처 몰랐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그 후 몇 년간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될 줄이야.
처음에는 여러 플랫폼에 온라인 강의를 판매했고, 이 강의들 덕분에 책도 출간하는 기회도 얻었다. 나중에는 나만의 웹사이트(자사몰)도 만들면서, 홍보를 위해 마케팅 활동도 했다. 인스타, 뉴스레터/블로그, 기고, 유튜브, 커뮤니티, 오프라인 세미나 등등. 지난 6년 간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시도를 했다.
이 중 거의 대부분은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중단하게 되었다. 현재는 뉴스레터를 제외하곤 모든 것이 멈추어 있다. 콘텐츠 작성 (뉴스레터/블로그) 정도로 아주 최소한만 유지하고 있는 중. 아마도 앞으로도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글로 적고 보니 꽤나 담담하게 느껴지는게 재밌다. 사실상 담담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수백번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거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본업도 있는데 말그대로 부차적으로(사이드) 하는 프로젝트가 뭐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대수,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20년에 시작해서 올해(25년)에서야 정리를 했으니, 총 6년 동안 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마음을 쏟았다. 전반기는 성취감과 약간의 경쟁심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 경쟁심의 정체는 글 말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후반기는 사이드가 힘겨운 직장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사이드를 이렇게 진심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재택 근무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일과 사이드를 병행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회사 일을 하지 않는 모든 시간은 사이드에 투자해야 했다. 끝도 없는 '할 일 목록'이 나를 짓눌렀고,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휴가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이 글을 쓴다고 지난 글들을 좀 찾아봤다. 23년 즈음부터 '선택과 집중'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아마도 스스로 지쳐가고 있다는 걸 이 때부터 알아챈 듯 하다. 뒤돌아 보면 사이드에 대한 마음으로 고군분투를 하느라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벌려 놓은 일들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와중에도 내 마음은 늘 갈팡질팡했다. 에너지가 부족할 땐 '그만해야지' 싶다가도, 조금만 기운을 차리면 '다시 해봐야지'를 수백번 반복했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나는 희노애락을 느꼈다. 이제 좀 그만해야겠다 싶은데... 도대체 내 마음은 언제쯤 정리되는 걸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5년 10월. 한 달 동안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으로 3번의 출장을 다녀왔다. 올해 초, 직무가 바뀌면서 매달 최소 1번은 출장을 가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간 출장 중에도, 잠을 줄여서라도 기어코 사이드 업무를 해내왔는데. 뭔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제때 못 만들어도, 인스타 업로드를 못해도, 뉴스레터 발행일이 지나도, 뭐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10-11월에는 정말 중요한 행사가 많았다. 이 때부터 (직무를 바꾼 후) 가시적인 성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2년 여의 지독한 우울과 침체의 시기를 벗어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12월 중순, 이벤트를 통해 얻은 계약 기회들이 감사하게도 체결이 되었고 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 사원으로 선정이 되었다.
이 3개월을 보내며 그간 그렇게 노력해도 되지 않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음 챕터(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지난 6년이 비로소 '과거'가 될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더 본업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본업 8, 사이드 2 정도. 단지, 시간 측면에서 뿐 아니라 본업에 내 에너지와 정성 그리고 마음의 8할 이상을 쏟아보려고 한다.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소 무식하지만 직접 해봤기에 후회는 없다. 사이드를 통해 내가 해온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6년 간 축적의 시간과 경험은 탄탄한 기초가 되었다. 이제는 이를 디딤돌 삼아 무엇이든 전보다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사이드를 하며 다양한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났다. 때로 그분들(의 서비스/제품)과 경쟁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혹은 본업으로 이 일을 하면, 그들과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매월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하며 목숨 걸고 일하는 그 간절함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걸 혼자서 만드는 아뜰리에의 수공예품 아뜰리에 운영자였다. 대량으로 만든 합리적인 가격의 고퀄리티 제품과 경쟁해서도 안 되었고, 이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뜰리에가 본업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래서 앞으로 이어갈 2할의 사이드는 내가 뭔가를 직접하는 대신, 훌륭한 분들과의 협업 위주로 진행해보려고 한다.
결국, 무엇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인거다. 필요없는 것들을 다 빼고 난 후에야 원씽(One Thing), 집중해야할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알 수 있는 것.
그렇다. 선택과 집중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과정 같지만, 사실 마음의 문제, 감정의 영역이기도 하다.
2025년 12월,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나의 본업과 더불어 그동안 (한 곳에 몰빵하느라) 챙기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보고자 한다.
본업을 열심히 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고,
취미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단순하지만 여유로운 일상 만들기.
진짜 별거 없고 간단한 이 목표가, 나는 너무 좋다. 2026년은 왠지 더 행복한 한 해가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