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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Oct 22. 2022

[넷플릭스] 글리치 (2022)

친구와 함께라면 그깟 오류쯤이야 (전여빈/나나/넷플릭스 드라마/이동휘)

글리치 (2022)

연출: 노덕

극본: 진한새

출연: 전여빈, 나나, 이동휘, 류경수, 백주희 등

장르: SF, 스릴러, 코미디

공개 회차: 10부작

 유년 시절의 ‘지효(전여빈)’는 괴짜로 통했다. UFO를 추종하며 전세계의 초자연적인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는 중학생 소녀에게 이해 혹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여느 날처럼 학교 옥상에서 전자파 탐지기를 손에 쥔 채 음악을 듣고 있던 ‘지효’ 앞에 처음으로 말을 거는 소녀 한 명이 나타났다. ‘지효’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영혼의 친구, ‘보라(나나)’와 ‘지효’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외계인과 사이비 종교. 작품을 관통하는 거대한 소재들이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집요한 자아 탐색과 성장의 과정, 그리고 두 여자의 우정이다. 작품이 미스터리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외계인이나 비과학적인 사건들을 파고드는 데 열중하지 않는 것은 주인공을 둘러싼 ‘믿음’의 실체를 확인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정들이 더 중요하게 다뤄 지기 때문이다. 

‘지효’에게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괴짜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며 평범한 친구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환각인지 실재인지 알 수 없는 외계인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안 보이는 척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 숨어든 채 불완전한 평화를 유지하던 찰나 외계인의 흔적이 턱 끝까지 쫓아오고, 급기야 헤어진 남자친구 ‘시국(이동휘)’이 실종된다. 안정적인 일상은 깨졌고, 오류(Glitch) 상태에 놓인 ‘지효’는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나 외계인이 보여.’ 누가 이 문장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순수하게 믿어줄까? 소통이 불가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지효’를 더 답답하게만 만들 뿐이다. 시청자들마저 답답하게 할 정도로 그가 입을 꾹 닫은 이유는 애초에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국’의 실종으로 외계인과 UFO에 대한 ‘지효’의 생각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했다. 남자친구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믿음의 실체를 꼭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증명하는 길일 테니까. 

 ‘지효’를 혼란에 빠뜨린 미스터리는 그를 외계인도, 남자친구도 아닌 오래 전 사이가 틀어진 친구 ‘보라’에게 데려다 놓는다. 어린 시절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친구, 함께 아지트를 만들고 비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영혼의 단짝. 한때 ‘보라’는 ‘지효’의 오해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지만 관계의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거침없는 태도와 담대함을 무기로 친구를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의 실체를 독종처럼 파고든다. ‘지효’가 겁에 질리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고장이 날 때마다 ‘보라’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아 앞으로 이끈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순간에 부딪힐 지라도. 정상의 궤도를 걷고 있던 ‘지효’에게 찾아온 혼돈은 그를 얼어 붙게 했고, 공룡만한 크기의 외계인에게 쫓기며 두려움을 경험했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지만, 자신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지효’는 온전히 혼자였다. 그런데 겉으로는 트러블 메이커 같아도 능수능란하게 위기를 넘기며 해결사를 자처하는 ‘보라’가 자신의 기묘한 운명에 같이 뛰어들었다. 

 비록 하나 뿐이지만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지효’는 주저 없이 외계인과 사건들의 연관성을 파헤친다. ‘시국’의 납치, 외계인과 UFO, 정신병원과 ‘하늘빛들림교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지효’는 자신과의 연관성을 찾아내기 위해 사이비 종교단체에 잠입하고, 호산나를 연기하는 위험까지 감수한다. 이 모든 과정을 감내한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찾기 위해서다. 비록 제3자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을 지라도 ‘지효’는 자신의 두 눈에 보이는 외계인이 환각인지 실재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 꼭 확인해야만 했다. 자신이 믿고 살아온 현실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꽤 오랫동안 자기부정을 거듭하며 거짓된 자아를 만들고 평범함을 지키고자 애썼던 ‘지효’는 상상치도 못했던 스케일의 모험을 겪으며 자신이 봉인했던 과거의 자아를 되찾고 진짜 ‘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사실 사이비 종교나 외계인은 단지 ‘지효’의 자아 탐색과 성장을 위한 배경이자 수단이었을 뿐이다. 주인공이 범상치 않은 인물인 탓에 본의 아니게 그 과정이 스릴러에 판타지 장르가 되어 버렸지만. 

 또 같이 찾으면 되지, 안 그러냐?

 외계인의 존재를 목도하기 전, 종교 의식의 호산나로 낙점되어 손발이 묶인 채 광신도들 앞에 전시되어 있던 ‘지효’는 자신의 신념이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무너질 뻔한다. 하지만 ‘보라’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를 구하며 자신의 믿음을 보여준다. 눈물을 흘리며 ‘지효’를 끌어안는 ‘보라’의 눈빛에는 그를 향한 확신이 서려 있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무한한 신뢰를 주는 조력자이자 동반자의 등장. 진실과 자아를 찾겠다고 나선 친구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싸울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겠는가. ‘보라’의 존재만으로도 ‘지효’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친구와 함께한 모든 여정을 통해 자신에게 불어 닥친 오류를 극복했다. 어쩌면 고생 끝에 입증한 자신을 향한 믿음보다 누구보다 자신을 믿는 친구와의 조우가 ‘지효’가 외계인 사태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1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만난 두 친구이지만 마치 늘 함께였던 것처럼 의기투합하여 이들 앞에 폭탄처럼 터지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영리하고 용감하게 헤쳐 나간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사이비 종교 단체나 외계인 따위와 맞서는 것도 두렵지 않다. 어딘가 모자라고 나사가 하나쯤 풀려 있는 것 같은 두 주인공의 모험과 ‘지효’의 성장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너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여자들의 우정이 빛난다. ‘보라’는 ‘지효’를 오류 속에서 꺼내 구원하였고, ‘지효’는 삶의 권태에 빠진 ‘보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헛된 신념에 빠진 사이비 종교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저마다의 구원을 찾았지만 무한한 믿음으로 형성된 벗을 통한 구원 앞에 이들의 허황된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을 때, ‘나’를 완전하게 믿어주고 ‘나’를 위해 주저 없이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곁에 두는 것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그 존재로부터 확신을 얻은 ‘지효’는 무너지지 않았고, 스스로의 삶마저 완벽하게 구원했다. 오합지졸 같던 두 주인공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허접하고 유쾌하다가도 어느샌가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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