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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Oct 23. 2022

[넷플릭스] 20세기 소녀 (2022)

다 알지만 속아줄 수 있는 낭만과 여운 (김유정/변우석/로맨스/청춘)

20세기 소녀 (2022)

감독: 방우리

출연: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장르: 로맨스, 드라마

상영시간: 119분

공개일: 2022.10.21

<20세기 소녀>. 제목만 들어도 이야기의 서두와 결말이 완벽하게 예측되는 고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 90년대 배경, 공중전화와 비디오 테이프, 삐삐가 상징하는 아날로그 문화, 왈가닥 하는 성격의 소녀와 엄친아 소년이 티격태격 하다 사랑으로 발전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스토리는 청춘 로맨스 장르의 클래식이자 클리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스물다섯 스물하나>, 혹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나의 소녀시대>를 과몰입해 시청했던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새롭게 느끼기 힘든 서사이기도 하다. 첫사랑 이야기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이름만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심지어 국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첫사랑 이야기의 공식은 여전히 통한다. 뻔하고 유치할 지라도 네 청춘남녀의 떼 묻지 않은 우정과 사랑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작중 주인공 ‘보라(김유정)’는 아픈 심장을 수술하러 미국으로 떠난 단짝 친구 ‘연두(노윤서)’를 대신해 친구가 짝사랑하는 ‘현진(박정우)’을 주도 면밀하게 관찰한다. 매일 같이 뒤를 쫓아 관찰 일지를 쓰고, 이메일로 친구에게 보고를 할 정도로 큐피드 역할에 꽤나 진심이다. 하지만 ‘현진’의 절친 ‘풍운호(변우석)’에게 곧바로 들킨 이후 투닥거리는 사건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소년소녀 사이에는 풋사랑의 감정이 싹 튼다. 드라마틱한 흐름의 감정선은 아니지만 ‘보라’와 ‘운호’가 붙는 장면마다 설렘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 때 그 시절 첫사랑의 경험 유무와 관계없이 추억 조작의 필터를 덧씌운다.

하이틴 청춘물 장르의 작품은 주연 배우의 역할이 특히나 중요하다. 비주얼은 물론이며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감성의 대사까지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는 연기력도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정’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 감독의 판단은 탁월했다. ‘나보라’를 연기한 ‘김유정’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나희도’<응답하라> 시리즈의 ‘성시원’‘성나정’ 못지 않게 기분 좋은 활력과 사랑스러움을 마구 발산하며 뛰어난 존재감으로 극을 휘어잡는다. 가벼운 코미디와 풋풋한 로맨스, 절절한 감정신까지 ‘김유정’의 20년 연기 내공은 본작에서도 빛을 발한다. ‘현진’과 ‘운호’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 통통 튀는 매력의 소녀에게 한눈에 빠져들었듯이 관객 역시 ‘김유정’의 모습에 연신 미소를 띠게 된다. 그동안 연기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적 없었던 ‘변우석’도 싱그러운 첫사랑 소년 그 자체로 분했다. ‘연두’와 ‘현진’을 포함한 네 친구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운호’와 ‘보라’의 러브 스토리를 장편의 에피소드로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제작되었더라도 재미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공식이 있듯 ‘연두’의 오해로 인해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보라’의 첫사랑은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일이 제대로 꼬인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 결단을 내려야 하다니. 열일곱 인생의 최대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플롯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대개 중반부부터 더욱 뻔한 구조를 취한다. 같은 남자를 좋아한 두 친구의 우정이 깨지고, 주인공들의 오해로 인해 결국 이들의 첫사랑은 허무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식의 전개. 이와 차별화된 구성을 택한 <20세기 소녀>를 보며 해당 장르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느꼈다. 본작은 친구와의 우정, 이성 간의 애정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본디 상대방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피어났음을 나타낸다. 오해가 있었지만 ‘보라’와 ‘연두’의 우정은 깨지지 않았고, 두 친구는 끝까지 서로를 위한 선택을 했다. 애초에 우정에서 촉발된 이들의 풋사랑이기에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치정을 이유로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졌다면, 작품의 청량감과 몽글몽글한 감성도 빛을 잃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뒤엉킨 친구들의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되었음에도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보라’와 ‘운호’는 기차역에서 눈물과 함께 진심을 고백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운명의 장난은 잔인했다. 누군가의 오해도, 친구와의 엇갈린 삼각관계도, 현실적인 문제도 아닌 알 수 없는 연락 두절을 이유로 관계가 끝났으니까. ‘보라’는 그 이후로 ‘운호’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소년이 담긴 마지막 선물을 확인함으로써 애틋한 사랑의 잔상을 떠올린다. 카메라 렌즈 너머 늘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소년의 진심은 비디오 테이프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낡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했다. 운명적으로 이뤄질 수 없던 두 사람이다. 하지만 20년 전 발송한 영상편지를 통해 전해진 첫사랑의 온도는 홀로 남은 당사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절한 정서를, 그리고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을 관객에게는 쉽게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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