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물고기일까,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싼 값에 물고기의 생명을 팔았고 아빠는 싼 값에 죽은 물고기의 몸을 팔았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집에서 나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물고기, 죽은 물고기를 생선이라고 구분 지었다. 왜 하필 두 분은 물고기와 인간의 거래를 나서서 중매하는 일을 하게 된 걸까. 근데 뭐, 물고기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나는 인간이니까. 물고기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애는 왜 하필 멸치일까.
그 애는 인간 같지 않은 물고기였고 비록 육지에서 지내고 있지만 아가미로 호흡하는 멸치였다. 그래, 완벽하게 인간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인간이라 하더라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고기도 아니었다. 생선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떠올렸다. 인간을 동경하는 물고기의 이야기. 그 애도 인간을 동경해서 인어가 되기로 결심한 걸까. 난 정말 그 애가 알고 싶고 궁금해서 미칠 노릇인데 나 혼자만 방에 꼭꼭 숨어서 지랄 발광을 떨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물고기를 향한 내 사랑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물고기를 해체하는 작업도 아마 계속될 것이다. 물론 엄마에게 들키지 않아야 가능하겠지만. 만약 지금 당장 직업을 갖게 된다면 물고기를 돈과 맞바꾸는 엄마나 파리로부터 죽은 생선을 지키는 아빠와 달리 물고기를 해체시키는 물고기 해체 분해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 애에게 나의 값어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작은 물고기 안에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것들이 가득 담겨있는지, 영롱하고 빛나는 두 눈에 각인시키고 싶었다.
손에서 얇은 집게를 놓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컷팅 매트 위에 내가 일궈낸 것들을 자랑스럽게 내려다봤다. 뿌듯했다. 학교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웠던 일은 이미 아득히 먼 옛날 일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가 됐든 간에 그때 나는 기분이 아주 더러웠었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었고, 짝꿍은 옆에서 나를 며칠이나 간 봤을 게 분명했을 테니까. 그리고 짝꿍과 그 애가 친밀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싫었다. 청소년기의 질투란 참으로 무섭구나.
해체시켰던 것들을 치우고 방에서 빠져나와 수족관이 있는 가게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엄마는 길고 시끄러운 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족관 한쪽 면에 손을 갖다 대었다. 물고기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있었다. 지느러미가 살랑거리며 춤을 췄다.
예전에 책에서 자살을 하는 돌고래 이야기에 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아쿠아리움에서 살던 돌고래가 인간들의 학대로 인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밤에 잠도 자지 못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었지. 그 광경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모색하다가 이내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결론에 도출했다. 바보 같긴, 이미 사방이 물고기 천지인데. 명색이 수족관을 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물고기를 볼 생각을 했다니,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수족관 앞에서 옛날 추억팔이에 잠긴 나는 어느새 방으로 돌아와 책장을 어지르고 있었다. 먼지가 나풀거리며 날아다녔다. 아, 찾았다. 책장 구석 모서리에서 쭈글어진 공책을 집어 들었다. 공책 앞표지에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실험 일지'가 적혀있었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과학 숙제인 척했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거실에서 들리던 말소리는 끊기고 대신 엄마가 앓는 소리를 내며 가게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페이지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