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도착했더니 언제나 그랬듯 멸치 대가리가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짝꿍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문득 어제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짐작일 뿐이지만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던 건 확실했다. 멸치 대가리와 짝꿍이 친해질 가능성은…….
반 애들이 모이니 적막하던 교실도 시끌벅적해졌다. 시끄러운 소음에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짝꿍은 말없이 교실로 들어와 말없이 자리에 앉고 말없이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사방이 지루한 인간들 뿐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제 느꼈던 미친듯한 감정도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눈이 뒤집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내 옆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저 년이 내 심기를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인생이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허무하고 재미가 없을까.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했다. 멸치 대가리의 지루한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보며 재밌는 일이 벌어지길 기다렸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날 즐겁게 해 봐. 어서. 뭐든 해보란 말이야.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삼인방마저도 책상에 코를 처박고 조용히 단잠에 빠져있었다. 3번의 쉬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멸치 대가리는 자리에 꼭 붙어 앉아서 문제집을 풀었다. 짝꿍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자리에 꼭 붙어 앉아 이 둘을 감시했다. 만약 내가 보는 앞에서 둘이 눈이라도 마주치면 기분이 아주 좆같아질 것 같았다. 그래, 내 기분이 아주 좆같아질 터였다.
점심시간이 되고 짝꿍은 혼자서 말없이 교실을 나갔다. 도시락을 싸 오는 멸치 대가리는 잠자코 자리에 앉아 밀물과 썰물을 기다리는 인어처럼 말없이 기다렸다. 나도 텁텁한 교실을 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멸치 대가리를 관찰하는 취지라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멸치 대가리가 밥을 먹을 모습을 숨어서 볼 수만은 없었다. 그렇잖아? 나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게다가 멸치 대가리가 밥을 먹는 광경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매 점심시간마다 멸치 대가리의 먹방을 봐서 내게 남는 게 뭐지? 의욕이 팍 죽었다. 내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관찰을 그만두고 교실을 나갈 채비를 하는데 교실 문이 열렸다. 멸치 대가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도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짝꿍이 매점에서 산 게 분명한 빵과 우유를 들고 문 앞에 서있었다. 성큼성큼 잘도 걷더니 멸치 대가리의 앞에 육중한 다리를 멈춰 세웠다. 아, 시발. 이 미친년이 설마…….
같이 점심 먹을래?
짝꿍 이 여우 같은 년이 멸치 대가리에게 제안을 걸어왔다. 친밀감의 표시, 앞으로 점심을 함께 먹으며 친밀해지자는 제안을.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아니, 감히, 내 앞에서……? 불륜 현장을 맞닥뜨린 별 볼 일 없는 하우스 와이프처럼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기다렸다. 멸치 대가리가 무슨 대답을 하기만을.
좋아.
뭐?
일제히 두 사람, 아니 인어 하나와 인간 하나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말을, 할 수 있어? 육지 인간의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었어? 아니, 잠깐, 내가 미친 건가?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내가 헛것을 들은 건가? 그게 아니고선…… 잠깐, 말도 안 되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미친 거 아냐? 멸치 대가리의 동그란 눈이 오늘따라 더 동그래 보였다. 짝꿍의 입가에는 긴장한 역력이 가득했다. 하, 어이가 없네. 선수를 빼앗겼다. 나도 분명 멸치 대가리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생각을 못 했다. 어느 누가 멸치 대가리랑 나란히 밥을 먹겠어? 다른 사람도, 그 무엇도 아닌 멸치 대가리와. 심장이 펄떡였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교실은 이제 누구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니면, 너만 좋다면, 그러니까…….
멸치 대가리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나는 입을 앙 다물었고 짝꿍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너도 같이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