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격차 해소를 향한 여정
교육격차, 우리 사회의 구조적 과제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통해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교육의 영향력 강화, 복잡해진 대학 입시 체제 등으로 인해 교육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문제를 가시화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학교의 문이 닫히고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발생한 학습결손은 저소득층 및 학력 하위권 학생들에게 집중되어, 학생들의 학업 성취 격차를 실질적으로 심화시켰다.
이러한 교육 불평등의 단면은 국내외 주요 통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동으로 실시하는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가정의 소득 수준과 부모의 학력에 따라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과 지출액, 나아가 학업성취 수준까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1) 또한, OECD PISA 조사는 우리나라 교육의 복합적인 과제를 드러낸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위(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tatus, ESCS) 변인의 상대적인 영향력 또는 기여율은 OECD 평균보다 낮아 교육 형평성이 일정 부분 확보된 것처럼 보이나, ESCS 상·하위 25% 학생 간의 절대적인 성취 점수 차이는 여전히 매우 크게 존재하며, 일부 최상위권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그 격차가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2) 최고의 공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격차는 이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격차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노력이나 성적 차이를 줄이는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는 근본적으로 학생이 접근할 수 있는 학습 기회, 가정 및 학교의 지원체계, 그리고 교육 경험의 질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이다. 따라서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길은 단순한 보충수업이나 땜질식의 성취도 제고 사업을 넘어, 학교가 중심이 되어 교육의 구조 자체를 형평성과 포용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일이어야 한다. 이 글은 학교가 교육격차 해소의 출발점이자 희망의 현장이라는 믿음 속에서 독자들과 함께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이다.
교육격차의 새로운 이해: 단순한 성취 차이를 넘어
OECD는 2023년 발간한 『Equity and Inclusion in Education』 보고서에서 교육격차를 단순한 결과(Result)가 아닌 기회의 불균등(Inequality of Opportunity)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이 서로 다른 출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자원과 지원을 제공해야 진정한 공정성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말하는 ‘형평성(Equity)’은 학생의 배경―사회경제적, 문화적, 신체적, 언어적 요인―에 관계없이 학업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포용성(Inclusion)’은 모든 학생이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고, 학습과 생활 전반에 참여하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형평성이 모든 학생에게 공정한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라면, 포용성은 열린 문 안에서 모두가 함께 배우며 머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OECD는 교육에서 형평성과 포용성을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실천 영역을 제시한다. 첫째, 정책 설계 단계에서 형평성을 반영하여 자원과 지원을 사회경제적 배경이 취약한 학교에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둘째, 학교 수준에서 포용적 문화를 조성해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을 예방해야 한다. 셋째, 교사의 전문성 개발을 통해 무의식적 편견이나 낮은 기대를 해소하고, 모든 학생에게 공정한 기대를 부여해야 한다. 넷째,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학교 밖의 불평등 요인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는 곧 학교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핵심 허브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한다.
학교의 역할: 형평성과 포용성을 실천하는 공간
첫째, 학교는 무엇보다 공정한 학습기회 보장의 장이어야 한다. 학생들의 서로 다른 환경적 출발선을 보정하기 위해, 기초학력 진단과 맞춤형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단순한 보충수업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속도와 배경을 고려한 다층적 지원이 필요하며, 기초학력 전담교사제, 키다리샘3), 협력교사제4), 방과후 연계 학습지원 프로그램 등이 실효성 있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둘째, 포용적 학교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학교는 학업 성취만을 평가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장애를 가진 학생, 경계선 지능 학생, 이주 배경 학생, 경제적 취약 계층 학생의 존재를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학교의 다양성을 높이는 배움과 성장의 주체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학생 간 비교보다 성장 중심의 학습, 차이를 배움으로 전환하는 협력적 문화가 학교 안에 뿌리내릴 때 포용성은 현실이 된다. 이를 위해 학생 참여형 의사결정 구조를 강화하고, 상호 존중 문화를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 및 다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정규 교육과정 내에 필수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셋째, 평가와 피드백의 혁신이 중요하다. 점수 중심의 서열화된 평가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피드백 중심의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학생의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지속적인 학습동기를 유지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기존 평가 방식을 왜곡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디지털 접근성이 높은 지역의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다. 따라서 AI가 교사와 학생을 돕는 협력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평가 체제를 혁신하고, 모든 학생이 AI 기반 학습 진단과 맞춤형 튜터링을 공평하게 제공받을 수 있는 ‘AI for Equity’ 전략이 필요하다.
넷째, 교사의 전문성과 공정한 기대의 힘을 주목해야 한다. 연구5)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에게 가지는 기대 수준은 학생의 학업 성취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 모든 학생에게 ‘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갖고 공정한 피드백을 제공할 때, 교육의 형평성은 교실에서 구현된다. 이를 위해 교원학습공동체나 수업 컨설팅 등 동료성 기반의 전문성 개발이 필수적이다.
다섯째, 협력적 학교조직 운영체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주적 학교문화와 교원학습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교사 간의 연대와 협력, 학생-교사-학부모 간 신뢰 기반 구축, 학교-지역 간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형평성과 포용성은 제도적 구호가 아니라 학교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교육격차의 많은 원인은 학교 밖의 요인에서 비롯되므로, 복지, 돌봄, 문화, 건강 등 다양한 기관이 함께 학생을 지원하는 지역사회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혁신학교운동과 함께 시작된 마을교육공동체운동 및 최근 들어 제도화된 ‘학생맞춤통합지원’ 시스템을 통해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학교와 연결하여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할 때, 학교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중심이 될 것이다.
형평성과 포용성을 위한 통합: 영림중학교 사례
이러한 교육격차 해소와 형평성·포용성의 실현은 이론적 논의를 넘어 학교 현장의 구체적인 실천 계획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필자가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영림중학교는 2023년부터 2026년까지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며,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가 교과와 학년을 넘나들며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할 여섯 가지 핵심 과제를 선정하였다. 이 과제들은 형평성 제고와 포용적 문화 구축을 위한 구조적 노력을 담고 있으며,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강과 기초소양: 학습의 기초가 되는 ‘문해력’과 ‘수리력’을 강화하고 심리적 건강을 확보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학습 기회의 형평성(Equal opportunity)을 보장하는 핵심 영역이다.
학교자치와 교육과정: 학생과 교사가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하며 학교 자치를 활성화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의 참여와 주인의식을 높여 학교 공동체의 온기를 더한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 생태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교육과정 전반에 녹여내는 것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보편적 가치 아래 함께 공존하는 세계시민 교육의 기반이 된다.
세계시민형 공존교육: 다문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등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배움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이 과제는 포용적 학교문화의 직접적인 실천 방향이다.
교육의 디지털 전환: 디지털 기기의 단순 활용을 넘어, 교수·학습 및 행정 전반의 디지털 역량을 전환하여 미래 사회의 필수 소양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제공한다.
교육공간 혁신: 학습 환경 자체를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변화시켜 학생 중심의 교육 경험을 확장하고, 물리적 환경에서의 불평등을 최소화한다.
이처럼 영림중학교의 중장기 계획은 OECD가 제시한 정책 설계(자원 배분), 학교문화 조성, 전문성 개발, 지역사회 협력 등의 네 가지 실천 영역을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교육격차 해소를 단순한 사업이 아닌 학교의 근본적인 문화와 구조의 문제 즉, 민주적인 학교문화와 자율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형평성과 포용성의 학교로 나아가는 여정
교육격차 해소는 단기간의 정책 사업으로 완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는 학교가 지닌 가치, 문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긴 여정이다. 형평성과 포용성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교육의 본질을 되살리는 두 축이다.
학교는 이제 학생 각자의 성취의 차이를 줄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학생 각자의 소질과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교육이 사회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앞으로의 과제도 분명하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교육격차 해소를 국가 비전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은 형평성과 포용성의 기준 및 취약학교 지원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학교는 이를 토대로 학생과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실천적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교원양성과 연수 과정에서 형평성과 포용성을 미래사회의 핵심 역량으로 다루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비교사 단계에서는 교육격차의 원인과 사회구조적 맥락을 이해하고, 포용적 수업 설계와 공정한 평가를 실천할 수 있는 교수학습 역량을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 현직교사 대상 연수에서는 학습 격차 진단, 협력적 지원, 회복적 관계 형성 등 구체적 사례 중심의 전문성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형평성과 포용성을 정책 용어가 아닌 교육학의 언어로 체화할 때,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전환이 가능하다.
교육격차 해소를 향한 여정은 곧 학교가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이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모든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움의 기회를 공정하게 누리면서 공존의 지혜를 배우는 학교를 만드는 일, 이 특별한 여정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의 고리를 끊고 미래를 여는 확실한 길이다.
이글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계간으로 발간하는 『교육광장』 2025년 겨울호(통권 90호) '교육에 바란다' 코너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kice.re.kr/upload/brochureBoard/1/2025/12/873/ebook/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