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무엇,
성공한 여성의 표본,
남성들만 가득한 그 시대의 부당한 대접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당당히 꿈을 펼치고 있는 멋진 여성,
일과 가정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 멋진 엄마와 스마트한 커리어우먼으로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그녀,
회사 alumni 중 한 분인 그런 멋진 선배가 회사에 방문해서 여성만을 대상을 설명회를 한다고 했다.
유독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주제라서 참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참석하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나같은 사람에게는 네트워킹도 하고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뭐 신청자가 별로 없으니 가장 동원되기 쉬운 인력 역시 뉴 조이너이기에 이해는 갔다.
전날 술을 마시고 집에와서 남은 업무를 마저하고 새벽에 자느라 별로 잠도 자지 못한 상태였는데다가,
오늘 할일도 이것저것 있는지라 정말 체력적으로나 멘탈적으로나 그 시간에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참여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외모에서부터 tv에서 보이는 중년의 고운 여의사, 여변호사 처럼 완벽하게 잘 관리된 분위기를 풍겼다.
동시에 그 시대에 없을법한 똑부러지고 당찬 캐릭터를 가졌지만, 또 ‘여성특유의’ 부드러움을 발휘하여 업무를 할때 얼굴붉히는 일 없이 ‘유두리 있게’ 업무를 수행해 왔으며
그래서 어찌어찌 중의 여성 최초의 어찌저찌하는 자리에 오르신 분이었다.
가끔 그런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을 넘어서 뭔가 같은 종족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이 들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내 스스로가 너무 꼬인건가 싶은 자괴감에 빠질때가 있다.
특히 같이 참석한 여성분들이 눈을 반짝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감명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고객을 끄덕일때마다
내가 있을곳이 여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 뉴 조이너 입장에서 조금 움츠러들었다.
조금 극적이지만 나는 많이 실패한 사람들이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 뼈아픈 실패의 경험속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산산조각 나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버텼고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듣는것을 좋아한다.
출발선이 남들에 비해 한참이나 뒤쳐져 있고 운이 지지리도 없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그걸 이겨내고 대단한건 아니라도 그 어떤 무언가를 이룬 스토리를 좋아한다.
태초부터 잘난 사람이 운까지 좋아서 당연히 가지게 된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인생스토리를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또 자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자신을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이끌었는지에 대해서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자리는 내가 정말 피곤해 하는 시간이다.
우리 엄마보다 한 10살정도 어려 보였는데, 문득 응답하라 1988이 생각났다.
그 드라마에 보면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해외여행이 허가되어서 가장 여유로웠던 정봉이네집 어머니가 일본여행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이미 그 시절도 전에 아버지 덕에 여러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를 6~7명씩 낳아서 장남, 차남만 공부를 시키던 시대가 겨우 몇년 전일때 명문대 가장 좋은과에 합격해서 남성들과 함께 치열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와서 어떻게 남성중심의 회사에서 당당하게 악수를 청하고 할말 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했는지 이야기했다.
또 커리어 뿐 아니라 가정을 일구고 화목하게 꾸리는 데서도 조언을 해주셨는데
아이를 낳은 이후 ‘일에 소흘해지지 않고 어떻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며,
어머니가 거의 대부분 아이를 봐주셨지만, 아이의 중요한 이벤트에는 꼭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경험들을 공유했다.
그녀의 성공에도 분명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남몰래 세운 수많은 밤, 흘린 땀들, 그리고 어쩌면 시대의 부당함을 위해 맞서싸워야 했을 수많은 용기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출발선이 달라서, 여건이 안되서, 운이 안닿아서 꿈을 포기하고 능력을 감추고
혹은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대부분이다.
진정한 여성의 empowering은 그 시대를 살아왔지만 지금 사회가 정한 성공의 척도에서 너무나도 멀어진 여성,
‘62년생, 72년생 김지영’들이 대상이 되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를 비추어 보았을때
특히 여성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empowering을 독려하고 강의할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듯 하다.
우리 시대는 이미 어렸을때 부터 -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무언가를 못하고 가로막히던 시대가 아니었고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리더들이 아직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것도 점점 시간이 흐르고, 우리 세대의 친구 동료들이 리더의 위치에 올라갈때면 그 비율이 비슷해지거나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만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사회가 자꾸 누군가를 우상화하고 누군가를 공경하게 만든다.
조금 더 실패에 따뜻해지고 관용하고 성공의 척도가 다양해졌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꾸 돈과 지위의 성공스토리만 읊어대고,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에 대해서 열광하는 풍조가 더 심해지는것만 같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안의 의미없는 활자처럼, 잘난 사람들의 잘난 이야기는 멋지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참 안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