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환 시인의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를 읽게 된 건 순전히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얼마 전 비가 내릴 때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이 추위에 비라니, 하고 푸념을 했었다. 날씨 탓 계절 탓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겨울, 어느 주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야 할 때가 있었다. 아무도 앉지 않는 공원 벤치, 잠잠하기만 한 휴대폰, 텅 빈 하늘. 모든 것이 허(虛)했다.
마침 그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때아닌 비가 내렸을 뿐인데도. 뭔가 어긋났을 뿐인데도 그 어긋남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지 못했다.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도 예전의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비는 곧 그쳤지만, 虛한 느낌은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