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하고 있던 아파텔은 쉽게 팔렸다. 월세를 받고 있었는데 기간이 몇 달 남아있어서 잔금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파텔을 팔아 받은 선금과, 가지고 있던 돈으로 일단은 땅을 알아보기로 했다.
5000평의 땅이 필요했다. 사기엔 너무 비싼규모다. 일단은 10년단위로 대여를 하는 방법이 있다. 천안근교는 땅값이 비싼편이라 대여비조차도 만만치만은 않다. 남편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우스 30개동을 짓고 수천그루의 나무를 심으려면 몇억의 돈이 필요했다. 지어질 30동중 다섯동은농장어르신들께(우리에게 농사법을 알려주고 농장짓는걸 도와주기로 하신선배귀농인) 사례비로 드리기로 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게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아무리 시간을 아껴도 첫해농사를 지을 1년간은 수입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식구의 1년치 생활비를 확보하는 것 또한 너무 중요한 문제였다.
귀농을 하면서 그림같은 전원주택을 짓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가진돈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현실은 근처 시골의 빈집을 빌려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도저도 어려울땐 농장옆에 임시로 농막을 짓고 살 계획도했다.지도를 펴고 땅을 고민하고 마을을 찾아보고, 근처 초등학교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이었다. 그날은 우리집 삼남매중 첫째아들의 생일이었다. 갑자기 보은으로 넘어오라는 농장어르신들의 부르심이 있었다. 보은이 고향이었던 사모님께서 고향지인의 소개로 빌릴 수 있는 땅을 확보하고 있었다.
" 음...........보은? 천안이 아니고? "
이왕이면 내가 살고 있는 천안에서 귀농을 하면 좋을 일이었다. 하지만 5000평의 대토를 대여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꼭 천안만을 고집할수는 없었다. 게다가 보은은 대추의 고장아닌가 ?! 일단 군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날은 첫째의 생일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아이가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 취소하라고 할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케잌과 피자를 준비해놓고 아들만 집에 남겨놓은 채 동생들을 데리고 나갈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른들없는 빈집에서 9살 아들과 친구들만의 조촐한 생일 파티가 열렸다. 함께 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 친구들을 초대한 첫번째 생일 파티였건만...
하지만 그만큼 땅을 보러 가는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봄부터 천천히 해도 될 일이었지만, 조금더 서둘러 빠르게 나무를 심는다면 다가올 가을부터 약간의 수익을 얻을수도 있었다. 나무가 어려 올해 수익이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한해 더 자라는 것 만으로 내년수확률이 좋아질 것이다. 어차피 집을 팔아버린 마당에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추웠던 그 겨울, 나와 남편은 둘째와 셋째만 데리고 보은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드넓은 논밭이 나왔다.
"여기가 보은이구나 ~~ "
우리는 낯선 그곳을 유심히 살폈다.
조용한 시골동네였다. 때마침 점심때가 되었다. 사과대추농장 어르신들과 만나 근처 식당에서 동태찌개를 먹었다. 맛집인듯, 시골식당의 동태찌개는 너무 맛있었다. 손님들도 많았는데, 근처 동네분들로 보이는 할아버지들이셨다. 농장어르신이 말했다.
" 요즘엔 시골사람들도 외식을 많이 하나봐 "
우리가 살게 될지도 모를 곳이었기에 유심히 살펴보았다. 토박이인 듯한 식당 주인아저씨께 농장어르신이 물었다.
"사장님, 혹시 ...근처에 땅 빌려주실분 안계실까요? "
친절했던 식당사장님은 동네 이장님을 소개시켜 주셨다. 바로 옆에서 식사를 하고 이제 막 나가신 할아버지였다.
" 이동네 집집마다 숟가락 몇개있는지까지 다 알고 있는 분이에요. 전화 한번 해봐요. 좋은 소식 들을수 있을거야."
바로 전화를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좋은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더 알아본 후에 다시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다.
"역시 쉽지가 않구나... "
식사를 마치고 미리 봐두었다는 땅을 보러 갔다. 차를 타고 달리는데 멀리서 초등학교 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 드넓게 논밭이 펼쳐져 있는데다높은 건물들도 하나 없다보니, 초등학교 건물이 금방 눈에 띈것이다. 시골 초등학교 답게 건물은 좀 오래되 보였고 운동장은 참 넓었다. 인터넷 지도를 펴고 학교 검색을 하며, 가장 궁금했던 전체 학생수를 찾아보았다.
" 오늘은 쉬는날이니까, 내일 전화해 봐야겠어 "
남편은 땅을 살폈다. 농사짓기 좋은곳인가, 빌릴수 있을것인가...
그 사이 나는 열심히 눈을 돌려 근처 마을을 스캔했다. 파란색 지붕의 주택들이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 여기 일단 보고... 저 밑에있는 다음 땅 보러가자 "
넓은 논밭의 사이사이 농로를 또 달렸다.그곳은 그야말로 횡~~ 했다.높은 건물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 평야는 바람의 놀이터였다.
그날 그곳에서 불던 겨울바람이 유난히 싸늘하게 느껴졌다.
'만약 이땅을 빌리게 되면 난 저 동네에서 살게 되는 건가?'
초등학교까지는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였다. 자차로 등하교를 해야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시골학교는 스쿨버스 서비스가 잘되있다고 한다.
혼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 멀리서 오토바이 한대가 달려왔다. 통통 통통 땅주인 할아버지였다. 함께 간 농장어르신과 땅주인 할아버지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땅을 빌려달라 사정하는 말이었다. 의심많은 시골 할아버지는 계속 망설이셨다. 토지세를 연단위가 아닌 2년치를 미리주겠다 약속했다. 3년치 였던가? 결국 매년 막걸리값까지 챙겨주기로 딜을 했다.그럼에도 그분은 그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문중에 물어봐야 한다고 하시곤 오토바이를 돌려 가버리셨다. 결국 그날 기대했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아들 생일파티까지 포기하고 왔건만...'
기껏 달려왔는데 별 수확이 없자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한편으론 내심 천안의 다른 땅이 구해지길 바라는 마음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시골노인분들이 연세가 많아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일이 많다고 들었다. 토지세를 받으면 용돈벌이로도 좋을텐데,
'누이좋고 매부좋은일 아닌가 ?!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지?'
하지만 그건 나혼자만의 생각이었던 듯 하다.
" 의심이 많아서... 동네사람 아니면 잘 안빌려줘. 도시사람에겐 더해.. 땅빌려주면 큰일나는줄 알고..."
설득하고 설득하고... 이땅은 언제부터 빌릴수 있고, 저땅은 언제부터 비릴수 있고... 결국 5000평을 통으로 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세개로 나누어서 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