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ords Divi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ribe Jul 17. 2022

가족 Part 1

성서 내러티브의 비밀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기본적인 집단이다. 그 범위가 문화권에 따라 다르고, 아무리 현대 사회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부모와 자녀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는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성서다.


비신자들도 들어본 십계명에서 부모를 곤경 하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곤경 하라 정도가 아니라 불효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할 정도로 중대하게 다뤄지는 사안이다. 성서의 율법서에는 결혼, 이혼, 과부의 권리, 재산 분할, 자녀 문제 등 가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계율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성서는 단순히 가족에 대한 지침서가 아니라, 가정에 대한 방대한 내러티브이다. 애초에 야훼가 인간을 창조했을 때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6

이는 신이 피조물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이다. 수적으로 번성하여, 즉 가정을 이루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것이다. 인간은 양자 역학적 우연이나 자연선택이 아니라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design) 졌고, 신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그들과 함께 다스리는 파트너십을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 이처럼, 인간은 그 시초부터 가정의 모습으로 출발했고 그 가정에 온 피조물을 포함시키도록 확대시키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다.


성서는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문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의 핵심에는 신이 만든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에서 찾을 수 있다.


여자의 후손

하지만 왜 인간의 본래 목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이토록 큰 것인가? 인간이 야훼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그들은 지상 낙원인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 생존을 위해 땀을 흘리며 일해야 하고 여자에겐 출산의 고통이 생기는데,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가정 또한 죄의 영향을 받는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6

남녀 간의 성적 갈등, 가정 불화, 그리고 생존을 위해 평생을 다하여 노동하고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조금 익숙한 인생의 모습을 맞이하게 된다.  오죽하면 "The Human Condition"(인간이라는 질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생은 허무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편도 열차, 혹은 극복해야 할 핸디캡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상, 종교, 과학자도 인간을 이러한 존재로 규정한다.


성서에서 가족과 관련된 단어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중 첫 번째는 "씨", 비유적으로 "후손", "자손" 따위를 의미하는 제라(זֶרַע)이다. 인간은 왜 본래 창조된 목적에 따라 신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가? 하지만, 이 내러티브는 문제의 원인뿐만 아니라, 일찍이 해결책도 제시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인간의 가정이다. 야훼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뱀에게 다음과 같은 저주를 내린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제라"도 여자의 "제라"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제라"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창 3:15

인간의 혈통을 통해 세상의 모든 문제와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악을 무찌를 자가 나올 것이라는 이 약속이 앞으로 내러티브의 동력이 된다. 실제로 구약성서에 주요 인물들의 후손들을 연대순으로 나열한 족보가 이토록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이 여자의 후손이 과연 누굴까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남은 이야기를 맞이하게 된다.


선택된 가정 

성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가정"으로 번역되는 히브리 단어는 "미쓰파하"(מִשְׁפָּחָה)이다. 경우에 따라 "가정", "지파"(부족), "친지" 등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성서가 온 피조물과 온 인류의 이야기(cosmic narrative)로 출발했다가 어느 순간 한 개인, 그리고 그의 가족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의 성서는 아브람과 그의 가족, 그리고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과연 아브람이 창세기에서 예언된 그 여인의 후손인가 질문하게 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2, 3

어느 날, 야훼가 아담의 후손인 아브람에게 한 말이다. 원죄로 인해 어둠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신의 해결책이 바로 이 사람이다. 시간이 그가 이 부르심을 진정으로 받아들였을 때, 신은 더 이상 그를 아브람(히브리어로 "아버지")이 아닌 아브라함("열방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사실, 성서의 내러티브를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아브라함은 그리 윤리적이지도 선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아내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판다. 하지만 야훼는 끝까지 그와 한 약속을 지키고 아브라함의 많은 후손들이 훗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 족속의 후예인 유대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신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 야훼는 이 이스라엘을 통해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축복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기름부음 받은 집안

성서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다윗 왕이다. 거인 골리앗을 무찌르고 솔로몬 왕의 아버지이자 수많은 시를 쓴 문예인으로도 기억되는 다윗이지만 그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과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는 왕위에 오르고 야훼를 위한 집을 짓고 싶어 했다. 수많은 전쟁에 승리를 한 왕으로서 건축물을 통해 큰 복을 내린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게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였다. 하지만, 야훼는 예언자를 통해 이 계획을 반대한다.

야훼가 또 네게 이르노니 야훼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삼상 7:11

처음에 야훼는 다윗을 면박한다. 어떻게 인간인 네가, 온 우주를 창제한 야훼를 위한 집을 짓겠다는 게냐? 흥미로운 점은 야훼는 오히려 역제안을 한다. 다윗이 신을 위한 집이 아니라 야훼가 다윗을 위한 집을 짓는다. 여기서 "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בַּיִת)는 물리적인 "집", 즉 "house"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household", 다시 말해 "집안" 또는 "가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야훼는 다윗의 왕조에게 은총을 더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다. 그는 다윗 왕조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윗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 여자의 후손인가? 안타깝게도 그렇게 야훼의 총애를 받던 다윗도 우릴 실망시키고 만다. 그는 사랑에 빠진 여인을 취하기 위해 그의 남편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히브리 성서에 이스라엘의 왕들을 흔히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원어는 바로 "메시아"(מָשִׁיחַ)이다. 지상에서 특별히 야훼의 권위를 대행할 자라는 뜻이다. 세월이 지나 다윗의 혈통을 통해 궁극의 메시아가 탄생하는데 바로 마리아라는 한 여자에게 태어난 예수라는 인물이다.   


예수의 가족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라는 한 유대인 청년을 인류의 구원자로 믿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너무 당연하게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고 있지만 그가 성서에 등장하기까지 거의 1,000페이지 분량의 내러티브와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훼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은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의 가정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신약성서에서 기독교 교회를 제2의 이스라엘, 새롭게 선택된 신의 사람들이라고 조명하고 있다. 단순히 천당에게 입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선택된 소수를 통해서 결국 온 인류에게 야훼의 구원의 축복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가리키며 선포한 말씀을 보면, 그 역시 이 내러티브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 12:50

이제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이 땅의 모든 가정의 이야기가 되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이 참으로 많은 역할이 있지만, 성서는 가족이 궁극적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여주고 있다. 가정을 꾸리기를 점점 꺼리고, 더 힘들어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한 번쯤은 발을 담가볼 가치가 있는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평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